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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장려

공자 장려(公子 將閭, ? ~ 기원전 209년)는 중국 진나라(秦)의 황족으로, 진 시황제(秦始皇)의 아들이다. '공자(公子)'는 당시 제후국의 군주 아들을 가리키는 칭호이며, '장려(將閭)'가 그의 이름이다.

기원전 209년, 시황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세황제(二世皇帝) 호해(胡亥)는 간신 조고(趙高)를 낭중령(郎中令)에 임명하였다. 조고는 황제의 위엄을 세우고 반란의 싹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대신들과 황족들을 주살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세황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먼저 공자 여섯 명이 두(杜) 땅에서 처형되었다.

공자 장려와 그의 두 형제는 별도로 궁궐에 유폐되어 죄명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세황제는 사자를 보내 장려에게 "공자는 신하로서 마땅히 행동하지 않았으니 죽을 죄를 지었다. 관리는 법에 따라 처결하라"라고 전하였다. 이에 장려는 자신이 궁궐의 예법에서 빈찬(賓贊) 의례를 어긴 적이 없고, 정사를 논할 때 절개를 지키지 않은 적이 없으며, 명령을 받들어 응대할 때 실언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며 "무엇이 마땅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죄를 알고 죽어야겠다"라고 말하였다. 사자는 "신하된 자는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글에 적힌 대로 따라야 할 뿐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장려는 하늘을 우러러 여러 차례 탄식하며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도다!"라고 외친 뒤, 형제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와 권87 「이사열전(李斯列傳)」에 수록되어 있다. 공자 장려의 생년은 전해지지 않으며, 진나라 멸망 직전 이세황제의 황족 숙청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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