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세이쿄(権藤成卿, 1868~1937)는 일본의 농본주의(農本主義) 사상가이자 제도학자이다. 본명은 곤도 젠타로(権藤善太郎)이며, 후쿠오카현 구루메(久留米)에서 태어났다. 가학(家學)으로 동양고제도학(東洋古制度学)을 익혔으며, 한학과 국학에 정통하였다.
1902년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의 흑룡회(黒竜会)에 참여하였고, 이후 아시아 혁명 운동 및 일한합방 운동에 관여하였다. 1920년 자치학회(自治学会)를 설립하였으며, 1927년부터는 안코쿠 세이초(安岡正篤)가 설립한 긴케이 학원(金鶏学院)에서 제도학을 강의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황민자치본의(皇民自治本義)』(1920), 『남연서(南淵書)』(1922), 『자치민범(自治民範)』(1927), 『군민공치론(君民共治論)』(1932), 『농촌자구론(農村自救論)』(1932) 등이 있다.
곤도 세이쿄의 사상은 '사직자치론(社稷自治論)'으로 요약된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프로이센식 국가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함으로써 농민이 수탈당하고 공동체가 붕괴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가 주창한 '사직(社稷)'이란 토지(社)와 곡물(稷)에 기반한 자치적 공동체를 의미하며, 이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상호 계약과 협력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사상은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는 또한 국가 사회주의나 파시즘을 비판하였으며, 관료 통제와 결합된 국가 자본주의를 '파쇼(ファッショ)'로 규정하고 반대하였다. 군부 독재와 중앙집권적 통치에도 부정적이었으며, 의회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1932년 발생한 혈맹단 사건(血盟団事件)과 5·15 사건(五・一五事件)의 관계자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인물로 지목되어 투옥되었으나, 무관함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쇼와 유신(昭和維新)' 운동의 사상적 원류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곤도 세이쿄에 대한 평가는 학자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그를 '일본 파시스트' 또는 '초국가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사상이 오히려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자치적 무정부주의' 또는 '토착적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그의 저술이 난해한 한문체로 쓰여 있어 당대에도 오해와 왜곡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다.
1937년 7월 9일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구루메시에 있다. 그의 저작은 『권등성경저작집(権藤成卿著作集)』(전 7권, 별권 1권)으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