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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오강사 최익현 초상

곡성 오강사 최익현 초상(谷城 梧岡祠 崔益鉉 肖像)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434번지에 위치한 오강사(梧岡祠)에 소장된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초상화이다.

문화재 지정 현황

이 초상화는 2017년 7월 27일 전라남도 고시 제2017-263호에 따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수량은 1폭이며, 소유자 및 관리자는 오강사이다.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과 국립 및 지역 문화재 관리 기관에 정식으로 등록된 문화유산이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

해당 초상화는 대한제국기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채용신(蔡龍臣)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과 서양의 음양법을 잘 조화시켜 실제 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작품의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재질과 형식: 비단에 채색한 정면좌상(正面坐像)으로, 족자 형태로 제작되었다. 작품 규격은 세로 87.0cm, 가로 55.3cm이며, 족자 전체로는 세로 110.0cm, 가로 63.6cm이다.
  • 제작 방식: 최익현 74세 때의 초상화를 이모사(移摹寫), 즉 기존 초상화를 옮겨 그린 것이다.
  • 표현 기법: 얼굴과 손에 황토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했으며, 섬세하게 육리문(肉理文)을 표현하였다. 정자관(程子冠)과 화문석(花紋席) 등의 묘사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 착의와 자세: 검은 깃이 달린 심의(深衣)를 입고, 사대부들이 쓰던 관모인 정자관을 썼다.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왼손에는 『주자대전(朱子大典)』을 펴 든 모습이다.
  • 화기(畵記): 우측 상단에 "勉庵崔先生七十四歲像", 좌측 하단에 "己丑五月上澣前府使蔡石芝移慕寫"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기의 연대인 '기축(己丑)'은 오기(誤記)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제작 시기: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근대(1925년 이후)로 추정된다.

오강사와 최익현

오강사는 면암 최익현을 기리기 위해 그의 제자 조우식과 조영선이 1908년에 세운 사당이다. 일제의 압박으로 1916년에 폐쇄되었으나, 1946년 지역 유림들의 복원 노력으로 중건되었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고종에게 '청토오적소'를 올려 조약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매국 오적의 처단을 요청하였으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항일 투쟁을 벌였으나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1906년 12월 대마도에서 순국하였다.

문화재적 가치

이 초상화는 조선 말기 격동기의 애국지사이자 유학자였던 최익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하는 역사적 자료이며, 대한제국기 대표 초상화가인 채용신의 화풍을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전통 회화 기법과 서양 화법의 융합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상의 내용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곡성군청 문화관광 자료, 그리고 관련 정식 문화재 지정 고시를 바탕으로 한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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