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류수용령(穀類收用令)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에서 곡물을 강제로 수용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조선인들이 거두어들인 곡식을 '공출(供出)'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징수하여 일본으로 반출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 용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 근대 사료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18년 일본 정부는 일본 내 쌀 소동(米騷動)에 대응하여 '곡물수용령(穀物收用令)'을 발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일본 본토의 식량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편 일부 자료에서는 조선총독부가 1918년 8월 16일 곡류수용령을 공포하여 조선에서 생산된 곡물을 강제로 징수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경기로 인해 쌀값이 급등하고 일본 내에서 쌀 부족 사태가 발생하던 때였다.
이후 일제는 1939년 '조선 미곡 배급 조정령'을, 1943년에는 '조선 식량 관리령'을 공포하여 미곡뿐 아니라 대맥(大麥), 소맥(小麥), 밤 등에까지 공출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이는 중일전쟁 이후 전시 군수 식량 확보를 위한 강제적 수탈 정책의 일환이었다. 공출 대상이 확대되고 강도가 심해지면서 농민들은 산중 야적(野積), 땅속 은닉 등의 방식으로 공출을 기피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경작을 포기하거나 이농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곡류수용령의 정확한 법적 성격, 조선에서의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시행 기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설명이 상이하며, 공신력 있는 학술적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은 측면이 있다.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도 매우 간략한 수준으로 서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