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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시

고쿠라시(小倉市, Kokura-shi)는 일본 후쿠오카현 동부에 존재했던 행정 구역이다. 현재의 기타큐슈시 고쿠라키타구와 고쿠라미나미구에 해당한다. 1963년 2월 10일, 고쿠라시는 모지시(門司市), 도바타시(戸畑市), 야하타시(八幡市), 와카마쓰시(若松市)와 합병하여 기타큐슈시(北九州市)가 되면서 소멸하였다.

명칭 및 어원

고쿠라(小倉)라는 지명은 일본어로 "작은 창고"를 의미하는 한자 표기(小倉)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은 율령제 하에서 부젠국(豊前国) 기쿠군(企救郡)에 속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고쿠라번(小倉藩)의 성하 마을(城下町)로서 발전하였다.

역사

1602년(게이초 7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부젠국을 통치하게 된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가 고쿠라성을 축성하면서 고쿠라번의 성하 마을로 형성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나가사키 가도(長崎街道)의 기점이 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1632년(간에이 9년)에는 호소카와 씨를 대신하여 오가사와라 다다자네(小笠原忠真)가 입봉되었고,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오가사와라 씨의 통치가 이어졌다.

메이지 시대의 폐번치현(廃藩置県) 이후 고쿠라현(小倉県)이 성립되어 그 현청 소재지가 되었으나, 1876년 고쿠라현이 후쿠오카현에 합병되었다. 1889년 정촌제 시행과 함께 기쿠군 고쿠라정(小倉町)이 발족하였고, 1900년 4월 1일 시로 승격하여 고쿠라시가 되었다.

고쿠라시는 관영 야하타 제철소를 보유한 야하타시 등과 함께 기타큐슈 공업지대의 중심지로서 제조업과 군수 공업이 발전하였다. 1933년에는 고쿠라 조병창(小倉造兵廠)이 건설되었고, 일본 육군 제12사단이 주둔하는 군사 도시이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8월 9일,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 목표는 원래 히로시마와 함께 군사 도시였던 고쿠라였다. 그러나 당일 악천후와 전날 야하타 대공습의 영향 등으로 인해 투하 목표가 나가사키로 변경되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고쿠라의 운(小倉の運)'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3년 2월 10일, 고쿠라시는 인접한 4개 시와 신설 합병하여 기타큐슈시가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일 기타큐슈시의 정령지정도시 지정에 따라 기존 고쿠라시 지역은 고쿠라구(小倉区)가 되었다. 이후 1974년 고쿠라키타구(小倉北区)와 고쿠라미나미구(小倉南区)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른다.

폐지 당시의 정보

  • 면적: 208.72 km²
  • 인구: 305,423명 (1962년 10월 1일 기준)
  • 한자 표기: 小倉市
  • 가나 표기: こくらし
  • 폐지일: 1963년 2월 10일

주요 특징

고쿠라는 규슈와 혼슈의 접점에 위치한 교통 도시로서, 가고시마 본선과 닛포 본선의 결절점이며 국도 3호와 국도 10호의 분기점에 해당한다. 고쿠라역은 이 지역의 주요 철도 거점이다. 또한 경륜(競輪)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와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 등 여러 문화 예술인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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