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古朝鮮)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존재했던 초기 국가로, 그 역대 군주에 대한 정보는 문헌 기록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명확한 계보를 확립하기 어렵다. 고조선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단군조선, 위만조선의 두 시기로 구분되며,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사학계에서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단군조선(檀君朝鮮)
단군조선의 시조는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에 전하는 건국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경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단군왕검의 실존 여부는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신화적 인물로 간주된다. 단군의 아들로 전해지는 부루(夫婁)가 제2대 군주였다는 기록이 일부 문헌에 존재하나, 이는 부여의 전설과 혼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7세기경의 문헌에는 조선후(朝鮮侯)라는 칭호의 지배자가 언급된다. 이후 기원전 4세기경, 고조선의 군주는 연(燕)나라가 칭왕(稱王)한 것을 계기로 스스로 왕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의 군주를 조선왕 1세(朝鮮王一世)로 부른다. 그 뒤를 이은 조선왕 2세, 조선왕 3세의 존재가 문헌상 확인되나 구체적인 이름과 재위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문헌상 이름이 전해지는 최초의 고조선 군주는 부왕(否王, 휘: 否)이다. 그는 기원전 3세기경 재위하였으며,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형식적으로 복속하였다고 전해진다. 부왕의 아들 준왕(準王, 휘: 準)이 뒤를 이었으며, 그는 기원전 194년 위만(衛滿)의 정변으로 축출되어 남쪽의 마한(馬韓)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준왕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군주로 기록된다.
위만조선(衛滿朝鮮)
위만조선은 위만(衛滿)이 준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위만은 원래 연(燕)나라 출신으로, 무리 1,000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한 뒤 세력을 키워 왕위를 찬탈하였다. 그는 한(漢)나라의 외신(外臣)이 되어 주변 지역을 복속시키며 세력을 확장하였다.
위만조선의 역대 군주는 다음과 같다.
- 제1대: 위만왕(衛滿王, 위만) - 재위 기원전 194년 ~ ?
- 제2대: 이름 미상 - 위만의 아들로, 구체적인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 제3대: 우거왕(右渠王, 위우거) - 재위 ? ~ 기원전 108년. 위만의 손자로, 한나라와의 전쟁 끝에 내부 반란으로 살해되었으며, 이로써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기자조선(箕子朝鮮)
기자조선은 중국 은(殷)나라의 유신(遺臣)인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 의해 조선에 봉해졌다는 전승에 기반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학계는 기자의 동래(東來) 자체와 기자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주류 입장이다. 일부 후대 족보와 문헌에 41대에 걸친 기자조선의 군주 명단이 전해지나, 이는 신빙성이 낮은 후대의 창작으로 간주된다.
종합
고조선의 군주에 대한 정보는 중국 측 사서인 《사기》, 《한서》,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 그리고 한국의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단편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단군조선 시기의 초기 군주들은 신화적 성격이 강하며, 기원전 4세기 이후의 군주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행적과 재위 기간은 대부분 불명확하다. 위만조선의 경우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으나, 제2대 왕의 이름조차 전하지 않을 정도로 정보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군주 계보는 문헌 기록의 한계로 인해 많은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