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일본어: 小泉 純一郎, 1942년 1월 8일 ~ )는 일본의 정치가이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태어났으며, 게이오기주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하였다. 1969년 부친 사망으로 귀국한 후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1972년 12월 총선에서 가나가와현 제11구의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선출되어 이후 12선 의원을 지냈다.
고이즈미는 일본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제87·88·89대 내각총리대신(2001년 4월 26일 ~ 2006년 9월 26일)을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은 1,980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정권 중 사토 에이사쿠와 요시다 시게루 다음으로 긴 장기 집권 기록이다. 또한 자유민주당 총재(제20대)를 지냈으며, 우정대신(제56대)과 후생대신(제73·74·86대)을 역임하였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주요 정책으로는 우정 민영화, 은행 부채 정리 및 대손금 축소, 재정 구조 개혁 등이 있다.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신설하여 다케나카 헤이조를 기용하는 등 경제 개혁을 주도하였으며, 이는 일본 경제 회복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자유민주당의 기존 농촌 중심 지지 기반에서 도시 지역으로의 정책 전환을 시도하였다.
외교 정책方面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였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활동 중인 전쟁 지역에 일본 군대가 파견된 첫 사례였다. 북한의 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하여 납치 피해자를 귀국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이즈미는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 신사를 6차례 참배하여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으로부터 강한 항의와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 및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과의 정상 간 공식 방문이 중단되었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는 자신의 방문이 정치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00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60주년 기념일에는 "깊은 후회와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하고 일본이 다시는 전쟁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고이즈미는 총리 재임 당시 높은 국민적 인기를 누렸으며, 2001년 6월에는 약 80%에 달하는 지지율을 기록하였다. 그의 직접적인 화법과 개성적인 스타일은 대중에게 '준찬(Jun-chan)'이라는 친근감 있는 별명으로 불리게 하였다. 2005년 우정 민영화 법안이 중의원에서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여 자유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어냈다. 이 선거에서 '고이즈미 어린이들(Koizumi Children)'로 불린 많은 신예 의원들이 당선되었다.
2006년 9월 자유민주당 총재 임기 만료로 퇴임하였으며, 후임은 아베 신조였다. 2008년 9월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고, 2009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에게 물려주었다.
퇴임 후 수년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2013년 반원자력 운동에 나서면서 공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는 총리 재임 당시 원자력 발전을 지지했던 입장과 반대되는 변화로, 이후 탈원전을 주장하며 자민당의 친원전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성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8년 결혼하였으나 1982년 이혼하였다.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는 배우,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