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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 (삼국지)

고승(顧承, ? ~ ?)은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관료였던 인물이다. 자는 자직(子直)이며, 양주(楊州)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이다. 형 고담(顧譚)과 함께 오군 고씨 가문 출신으로, 이들 형제는 오나라의 명장이었던 육손(陸遜)과 외숙-외조카 관계였다.

가화(嘉禾) 연간(232~238년)에 육모(陸貌)와 함께 등용되었으며, 손권(孫權)이 고옹(顧雍)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승의 명성을 칭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기도위(騎都尉)에 배수되어 우림병(羽林兵)을 통솔하였고, 오군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되어 제갈각(諸葛恪)과 함께 산월(山越) 족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정병 8천 명을 거두어 장강(長江)에 군대를 주둔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시중(侍中)으로 내직에 들어갔으며, 241년 작피(芍陂) 전투에서 활약한 공로로 분위장군(奮威將軍)에 배수되었고 경하독(京下督)을 맡았다.

작피 전투에서 고승은 장휴(張休)와 함께 위나라 군대의 진격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였으며, 같은 해 수춘(壽春) 전투에서도 전종(全琮)이 왕릉(王陵)에게 패배한 상황에서 장휴와 함께 분전하여 위군을 저지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 논공행상에서 적을 멈추게 한 공을 크게, 적을 퇴각시킨 공을 작게 여겨 전서(全緖)·전단(全端) 등이 편장군(偏將軍)·비장군(裨將軍)에 그치는 반면, 고승과 장휴는 잡호장군(雜號將軍)에 봉해졌다. 이 결과로 손패(孫霸) 측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이후 이궁지쟁(二宮之爭)에서 형 고담, 장휴와 함께 교주(交州)로 유배되어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는 고승과 장휴에 대해 "뜻을 닦았으며,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들이 사람들의 원망을 받고 서로 공격해 남쪽 땅으로 유배당했으니 애석하다"라고 평하였다. 또한 적오(赤烏) 연간(238~251년)에 고승이 진표(陳表)와 함께 전비릉(全備陵)에서 수하를 이끌고 모였을 때 남녀가 각각 수만 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한편, 동일한 한글 표기의 고승(高昇, ? ~ 184년)은 황건적 장보(張寶)의 부장으로 《삼국지연의》에만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로, 역사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인물이므로 혼동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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