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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삼국지)

고수(高順, ? ~ 199년)는 중국 후한 말기의 무장으로, 군웅 여포(呂布) 휘하에서 활약한 장수이다. 《삼국지》 정사에는 별도의 열전이 없으며, 〈여포전〉, 〈무제기〉, 〈선주전〉 등에 그의 행적이 부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년과 자(字)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생애

고수의 행적이 사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건안 원년(196년)이다. 당시 여포 휘하의 장수 학맹(郝萌)이 원술(袁術)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여포는 급히 고수의 진영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했다. 고수는 반란군의 하내(河內) 출신 사투리를 근거로 주동자가 학맹임을 판단하고, 궁노(弩)를 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학맹을 참수하였다.

건안 2년(197년)에는 여포가 장패(臧霸)를 직접 공격하려 하자, 고수는 "장군께서 몸소 출군하시면 이기지 못할 경우 명성에 손상이 크다"며 만류했으나 여포는 이를 듣지 않고 출병했다가 패배했다. 이후 여포와 장패는 화해하였다.

건안 3년(198년)에는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장료(張遼)와 함께 유비(劉備)가 지키던 패성(沛城)을 공략하여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았고, 유비를 구원하러 온 조조(曹操)의 부장 하후돈(夏侯惇)의 군대도 격파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겨울, 조조가 직접 이끄는 대군이 여포의 근거지인 하비(下邳)를 포위하였다. 여포의 부장 후성(侯成), 송헌(宋憲), 위속(魏續) 등이 배신하여 성문을 열었고, 고수는 진궁(陳宮)과 함께 붙잡혔다. 고수는 여포, 진궁과 함께 처형되었으며, 그 수급은 허도(許都)에 효수되었다.

인물상

《영웅기》(英雄記)의 기록에 따르면, 고수는 청렴결백하고 위엄이 있으며 과묵하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지휘한 부대는 약 700명이었으나 그 위세가 1,000명에 해당한다고 일컬어졌고, 갑옷과 무기를 항상 정비하여 매번 싸울 때마다 적진을 돌파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 '함진영'(陷陣營)이라 불렸다.

고수는 여포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 자주 간언하였으나, 여포는 그의 충성은 인정하면서도 신임하지 않았다. 특히 학맹의 반란 이후 여포는 고수를 더욱 멀리하고, 그의 병력을 빼앗아 친척인 위속에게 넘겨주었다. 전투가 있을 때만 병력을 돌려주어 지휘하게 하였으나, 고수는 끝내 원망을 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고수가 여포가 조조에게서 연주(兗州)를 빼앗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연의에서 고수는 여포군의 팔건장(八健將)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하후돈과 수십 합을 겨루는 등 용맹한 장수로 묘사된다. 하비에서 여포와 함께 붙잡혔을 때 고수는 조조의 심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처형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평가

고수는 여포 휘하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깊은 장수로 평가된다. 정사 기록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웅기》 등에서 그의 무용과 인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전해진다. 여포의 부하 중 장료는 조조에게 귀순하여 이후 크게 활약했으나, 고수는 끝까지 여포를 따르다 함께 최후를 맞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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