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교회(고백교회, 독일어: Bekennende Kirche)는 1930년대 나치 독일 치하에서 독일 개신교회(독일 복음교회) 내부에 형성된 저항적 교회 운동이자 조직이다. 나치 정권의 교회 정책에 협력하던 '독일 그리스도인(Deutsche Christen)' 파에 맞서,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수호하고자 했던 목회자와 신도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역사적 배경 1933년 아돌프 히틀러 정권이 출범한 후, 나치는 개신교 교단을 '독일 복음교회(Deutsche Evangelische Kirche)'라는 단일 기구로 강제 통일(Gleichschaltung)하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나치 이념에 동조하는 '독일 그리스도인' 파가 교단 지도부를 장악하고, '아리안 조항'을 도입하여 유대계 그리스도인의 목회직 수행을 배제하며, 성경에서 구약성서를 배제하려는 등 신학적 변질을 꾀하자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주요 경과
- 베를린 다렘 고백(1933년 5월): 마르틴 니묄러, 디트리히 본회퍼 등이 중심이 되어 목회자 비상 동맹(Pfarrernotbund)을 결성, 나치의 교회 간섭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 바르멘 선언(1934년 5월): 부퍼탈 바르멘에서 열린 제1차 전국 고백교회 총회에서 칼 바르트가 기초한 '바르멘 신학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며, 교회는 세속 권력(나치)의 이념에 종속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고백교회의 신학적 기초가 되었다.
- 조직화 및 탄압: 고백교회는 자체적인 예배, 신학교(불법 신학교 운영 포함), 행정 기구를 운영하며 나치 정권에 맞섰다. 그러나 1937년 니묄러 체포, 본회퍼 강연 금지 및 체포 등 지도부가 탄압받고 내부적으로도 '타협파'와 '급진 저항파'로 분열되면서 조직적 동력은 약화되었다.
신학적 의의 고백교회는 국가 사회주의 이념을 종교적 진리 위에 두려는 '자연 신학'적 시도를 거부하고, 계시 중심의 정통 개혁주의 신학(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고백적으로 수호하려 했다는 점에서 20세기 교회사 및 저항 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값비싼 은혜', '세속적 그리스도교' 등의 사상적 토대가 된 운동이기도 하다.
한계와 평가 고백교회가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적 체제에 대한 정치적 저항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지는 못했으며, 유대인 박해(홀로코스트)에 대한 명확하고 집단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역사적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 권력 앞에서 교회의 주체성을 신학적 고백으로 지켜내려 했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