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노 오야마(일본어: 高麗 大山, こまのおおやま, 생년 미상 ~ 762년)는 일본 나라 시대의 관료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와 일본 측 사료인 『속일본기』 등에 실려 있는 실존 인물로, 고구려계 도래인의 후손이었다.
출신과 가계
고마노 오야마의 가문은 고구려계 이주민인 세나노 후쿠토쿠(背奈福徳)의 손자이자, 세나노 유키후미(背奈行文)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성씨는 처음에 배래공(背奈公)이었으며, 이후 배래왕(背奈王), 고려조신(高麗朝臣)으로 바뀌었다. 아들로는 다카쿠라노 도노쓰구(高倉殿継)가 있다. 관위는 종오위하(従五位下), 견고려대사(견발해대사)를 지냈으며, 사후 증정오위하(贈正五位下)의 지위가 추서되었다.
생애
747년 외정칠위하(外正七位下)였을 당시, 종형제인 배래복신과 남동생인 세나 히로야마(背奈広山)와 함께 고려조신(高麗朝臣)의 성을 사여받았다.
752년에는 견당사 판관(判官)으로써 당나라에 파견되었으며, 754년에 귀국하여 정육위상에서 종오위하로 승서되었다.
761년에 견고려대사(견발해대사)에 임명되어, 발해 사신인 왕신복을 따라서 발해로 건너갔다. 762년에 발해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병을 얻어, 사리요쿠노쓰(佐利翼津)까지 도착한 후 사망했다. 사후에 조정에서 두 계급의 승서를 받아 정오위하의 지위가 추증되었다.
역사적 의미
그의 관직 활동은 나라 시대 일본 조정이 고구려계 도래인 가문을 외교적 인재로 활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견당사 판관과 견발해대사 활동은 당시 일본의 대당(對唐) 및 대발해(對渤海) 외교에서 그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동음이의어
한편 '고마노오야마'는 일본 효고현과 오카야마현 경계에 위치한 산(해발 1,281m)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만 역사 인물로서의 고마노 오야마가 백과사전에 보다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명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된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