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국(古離國)은 삼한시대 마한의 54소국 중 하나이다.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마한을 구성하는 여러 소국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며, 고리국은 그 목록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고리국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여러 비정(比定)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병도는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골의노현(骨衣奴縣)이 있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진건읍 일대에 고리국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는 '고리(古離)'와 '골의(骨衣)'의 음운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과,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백제 정벌 성(城) 목록에서 고리성(古利城)이 나타나는 점에 근거한다. 한편 경기도 여주시 일대의 고구려 지명인 골내근현(骨乃斤縣)과의 음운 유사성에 주목하여 여주 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며, 경기도 양평군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학설이 공존하고 있어 정확한 위치는 단정할 수 없다.
고리국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서 맹주국과 일정한 결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토착적인 세력 기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성장을 지속하다가, 3세기경 백제에 점령·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개토왕릉비 영락 6년(396년) 기사에는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여 여러 성을 점령한 기록이 있으며, 그 목록에 고리성(古利城)이 포함되어 있다. '고리(古離)'→'고리(古利)'→'골의(骨衣)'로 이어지는 음운의 유사성을 근거로, 이 고리성을 마한의 고리국 지역이 백제 영역이 된 이후 고구려에 의해 점령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고리국의 규모에 대해서는 마한의 소국들이 대국은 약 1만여 호, 소국은 수천 호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고리국도 이러한 마한 소국들의 일반적인 규모 범주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리국 자체의 인구나 구체적 규모에 관한 별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리국의 '고(古)'는 중국 고대음이 'kuo', '리(離)'는 'ljie'로, 이들 소국의 이름이 당시 중국 고대음에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주요 참고 자료로는 『삼국지』, 『삼국사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있으며,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1976), 이현혜의 『삼한사회형성과정연구』(1984) 등이 관련 연구 문헌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