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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야

고령가야(古寧伽倻)는 『삼국유사(三國遺事)』 5가야조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상주 고령군조에 기록된 가야 연맹체의 한 나라이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일대(옛 함창군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유사』에는 고려시대의 지명인 함녕(咸寧)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현재의 함창(咸昌) 지역에 해당한다.

고령가야의 '고령'은 경상북도 고령군(高靈)의 대가야(大伽倻)와는 한자가 다르며(古寧 vs 高靈), 서로 다른 지역이다. 고령가야의 건국에 대해서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 넷째인 김고로(金古露)가 세웠다는 전승이 전해지나, 이는 후대에 형성된 계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계에서는 고령가야의 실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이 지역(함창 일대)은 원래 진한(辰韓)의 사벌국(沙伐國) 지역으로 신라의 영역에 속했으며, 신라 첨해왕 대에 사벌주(沙伐州)가 설치되면서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고릉군(古陵郡)이 설치되었다. 이후 757년(경덕왕 16년) 행정개편으로 고령군(古寧郡)으로 개명하였다. 따라서 고령가야라는 국명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 지역의 호족 세력이 가야의 후예를 자칭하면서 붙여진 명칭으로, 실제 가야 연맹 시기의 독립 소국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만 가야 패망 이후 다수의 가야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한 기록이 있어, 함창 일대 호족들이 이주한 가야인의 후예일 가능성은 제기된다.

한편 고령가야를 경상남도 진주(晉州) 지방에 비정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진주의 옛 이름인 거열(居列)이 '고령'과 음이 유사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나, 언어학적 어려움이 있어 현재는 함창 지역설이 보다 널리 받아들여진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본조사략(本朝史略)』은 고령가야를 가리현(加利縣)이라고 주석을 달았으나,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가리현은 성산군(星山郡) 지역으로 벽진가야(碧珍加耶)의 땅이었으므로 이는 오류로 판단된다.

고령가야의 역대 왕으로는 시조 고로왕(古露王, 재위 42년~156년), 마종왕(摩宗王, 재위 156년~220년), 말대 이현왕(利賢王, 재위 220년~254년)이 전해지나, 이 역시 후대에 편찬된 족보(함창 김씨)에 의존한 기록으로 사료적 가치에는 한계가 있다. 기타 구체적인 정치·사회·문화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하여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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