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진 정책(北進政策)은 고려 왕조가 고구려의 후계국이라는 자주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고구려가 점유했던 북방 영토를 회복·확장하기 위해 추구한 대외 정책이다. 고려는 건국 이념 차원에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복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표방하였다【1†L1-L4】.
개요
고려는 918년 태조 왕건이 즉위하면서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했고, 평양을 서경(서쪽 수도)으로 삼아 북진 정책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요(거란)와의 충돌을 계기로 강동 6주를 확보하고, 압록강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성종 때는 청천강을 넘어 평안북도 일대와 압록강 주변을 장악했으며, 991년(성종 10년)에는 압록강 이남의 여진족을 백두산 밖으로 몰아냈다는 기록이 있다【1†L5-L9】.
그러나 요(거란), 금(여진), 원(몽골) 등 강대국이 만몽 지방에 등장하면서 고려의 북진 정책은 제한을 받았다. 최탄의 난 등 내외부 요인으로 영토가 일시적으로 축소되기도 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벌을 시도하였다. 예종 때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고, 공민왕 말기에 요동·동녕부·요양 등을 정벌한 사례가 있다【1†L10-L13】.
어원/유래
‘북진’은 ‘북쪽으로 진출한다’는 의미의 한자어(北進)에서 유래한다.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국임을 주장하며 고구려가 차지했던 북방 영토를 복원하려는 정책적 목표를 반영한다. 고려의 건국 이념 자체가 고구려 계승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이는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이다’라는 서희·서긍 등의 사료에서 확인된다【1†L1-L3】.
특징
- 정치·이념적 배경: 고구려 계승 의식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 북쪽 영토 회복을 정당화하였다.
- 군사·외교적 수단: 요(거란)와의 전쟁, 여진·금과의 충돌, 그리고 원(몽골)과의 외교·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보하거나 방어하였다.
- 지리적 범위: 평양을 중심으로 청천강, 압록강 연안, 동북 9성 등 현재의 북한·러시아 연해주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 제한 요인: 요, 금, 원 등 강대국의 등장과 내부 반란(예: 최탄의 난)으로 인해 정책이 완전 구현되지 못하고 변동을 겪었다.
관련 항목
- 고려의 대외 정책
- 고려‑거란 전쟁
- 고려‑여진·금 관계
- 고려‑원(몽골) 전쟁
- 북진 정책(일반)
- 고구려 계승 의식
출처: 위키백과 ‘고려의 북진 정책’ 및 관련 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