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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갑옷

고려시대(918~1392)의 갑옷은 앞선 삼국시대·통일신라, 뒤이은 조선시대와 달리 실존 유물이 극히 드물어 정확한 형태를 고증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다만 몇 안 되는 기록·유물·미술 자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주요 갑옷 종류

종류 설명
찰갑(札甲) 작은 쇠미늘(찰)을 가죽끈이나 명주실로 가로·세로로 연결한 갑옷. 고려시대 주력 갑옷으로, 조선시대까지 큰 틀의 변화 없이 이어짐.
경번갑(鏡幡甲) 쇠사슬과 철판을 함께 연결하여 만든 갑옷. 대표 유물로 정지 장군 갑옷(보물 제336호)이 있음.
쇄자갑(鎖子甲) 철사로 작은 고리를 만들어 서로 꿴 갑옷(서양의 체인메일과 유사). 고구려 기록에도 등장하므로 고려 초중기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2. 시기별 특징

(1) 몽골 침략 이전 (고려 초~중기, 10~13세기)

  • 포형 찰갑(袍型札甲) — 두루마기 형태의 찰갑이 주류
  • 송나라식 투구 — 관자놀이 부분에 봉시식(鳳翅飾)이 달린 투구 사용
  • 견건(肩巾) — 목에 스카프처럼 두르는 천 장식. 조선시대의 호항(護項)과 달리 따로 목가리개가 없었을 가능성
  • 포두(抱肚) — 허리에 두르는 둥근 천을 착용
  • 어깨갑옷(覆膊)이 없음 — 서긍의 『고려도경』에 "부박(覆膊)이 없다"고 기록

『고려도경』(서긍, 1123년) 기록: "고려의 용호중맹군 3만 명이 모두 갑옷을 착용했는데, 이 갑옷은 위아래가 붙어 있는 두루마기 형태(봉액·逢掖)이고 어깨를 가려주는 부박이 없다. 장군의 갑옷은 철찰을 검은 가죽으로 덮고 명주실로 꿰매었으며, 허리에는 오색 꽃무늬 띠를 드리웠다."

(2) 몽골 침략 이후 (고려 후기, 13~14세기)

  • 원나라의 영향으로 갑주 양식이 변화
  • 첨주형 투구(尖胄形) — 긴 철판 4개를 세로로 배열하고 철띠와 쇠못으로 고정한 투구가 등장. 조선 초중기까지 이어짐
  • 포형 찰갑 자체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나, 투구와 장구류가 몽골식으로 전환

3. 주요 고증 자료

자료 설명
『고려도경』(高麗圖經)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고려를 방문하고 기록한 책. 고려군 복식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문헌
몽고습래회사(蒙古襲来絵詞) 일본이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1274·1281)을 그린 그림. 고려군으로 추정되는 병사 3명이 묘사됨
개심사지 오층석탑 부조 경북 예천의 석탑(1010~1011년 조성)에 새겨진 팔부중상. 고려 초중기 갑옷 연구의 핵심
평북 동창군 학성리 병실터 출토 찰갑 11세기 추정. 마름쇠찰갑 유물
정지 장군 경번갑 고려 말 장군 정지(1347~1391)의 갑옷. 보물 제336호. 유일하게 온전히 남은 고려시대 갑옷 유물

4. 조선시대 갑옷과의 차이점

구분 고려시대 조선시대
투구 송나라식 봉시식 투구 첨주형 투구, 몽고발주
목가리개 견건(천을 두름) 호항(철제 목가리개)
허리장식 포두 착용 (실전에서 사용) 포두 거의 사용 안 함
갑옷 형태 포형 찰갑 (상하의 일체형) 포형 찰갑 → 후기 두정갑

5. 한계와 의의

고려시대 갑옷은 유물이 극히 부족하여 문헌·미술품·주변국 자료에 크게 의존합니다. 특히 고려 초중기의 갑옷은 송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습니다. 다만 찰갑 자체의 기본 구조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큰 틀에서 유지되었습니다.

참고문헌: 『고려도경』(서긍), 『고려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갑주』(이강칠), 『조선의 무기와 갑옷』(민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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