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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연극

고대 로마의 연극은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로마 제국 전역에서 발전한 연극 전통으로, 고대 그리스 연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성립되었으며 이후 서양 연극사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기원과 배경

로마 연극의 형성에는 크게 세 가지 문화적 흐름이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그리스 식민지 연극의 영향으로, 기원전 8세기 이후 이탈리아 반도 남부와 시칠리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이 전한 비극과 희극의 전통이다. 시라쿠사의 독재자 디오니시오스 1세가 직접 비극을 창작했을 정도로 그리스 비극이 남이탈리아에서 유행하였으며, 특히 '즐거운 비극(Hilarotragodia)'이라 불린 희극적 장르가 발전하여 이후 로마 연극의 원형을 제공하였다. 둘째는 에트루리아 문화의 영향으로, 기원전 364년 에트루리아의 예능인들이 로마를 처음 방문한 이후 음악, 춤, 노래가 로마의 토속적인 파스켄니시(詩) 등과 혼합되어 사투라(혼합시)의 모태가 되었다. 라틴어의 히스트리오(배우)는 에트루리아어의 히스테르(댄서)에서, 페르소나(연기자/가면)는 가면을 쓴 에트루리아 댄서 페르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제 시대의 연극

본격적인 로마 연극 창작은 기원전 240년경, 그리스 출신의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가 그리스 비극과 희극을 라틴어로 최초로 번역·상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메난드로스의 작품을 번역하였으며, 이후 그나이우스 네비우스, 엔니우스 등이 뒤를 이었다.

로마 연극은 의상과 소재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그리스 의상(팔리움)을 입고 그리스 인물과 배경을 다룬 연극은 파불라 팔리아타(Fabula palliata)라 불렸고, 로마 귀족의 의상(토가 프라에텍스타)을 사용하여 로마의 역사나 영웅을 주제로 한 비극은 파불라 프라에텍스타타(Fabula praetextata)로, 로마 시민의 일상을 그린 희극은 파불라 토가타(Fabula togata)로 구분되었다. 또한 오스크 지방의 아텔라에서 유래한 파불라 아텔라나(Fabula Atellana)는 브코, 막스, 도세누스, 팝스의 네 가지 고정된 희극 인물 유형을 사용한 즉흥적 소극(笑劇)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요 극작가

로마 희극의 대표적 작가로는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기원전 254경~184경)와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기원전 195/185~159경)가 있다. 플라우투스는 그리스 신희극을 바탕으로 하되 로마의 매너와 풍습을 도입하고 떠들썩한 유머와 음악을 가미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의 작품 약 20편이 현존하며, 《암피트루오》, 《카시나》, 《아우룰라리아》, 《마일스 글로리오수스》 등이 대표적이다. 테렌티우스는 플라우투스보다 원작에 충실하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안드리아 여인》, 《형제들》 등의 작품을 남겼다.

로마 비극의 주요 작가로는 엔니우스, 파쿠비우스, 아키우스 등이 활동하였으나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어 제목과 단편만 전해진다. 이들은 주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모방하였으며, 과장되고 수사적인 대사와 피비린내 나는 자극적 제재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정 시기에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기원전 4경~기원후 65)가 비극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후대 르네상스 비극, 특히 셰익스피어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공연과 극장

로마에서 연극은 주로 국가 축제일(Ludi)에 상연되었다. 가장 오래된 '로마인의 축제(Ludi Romani)', 기원전 220년부터의 '민중의 축제(Ludi Plebeii)', 기원전 212년부터의 '아폴로 축제(Ludi Apollinares)' 등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200년경에는 연간 10여 일에 불과했던 상연일이 아우구스투스 치세에는 국가 지정일만 40여 일에 달했으며, 그 외 개선식이나 기념일에도 특별 공연이 열렸다.

초기 로마에는 상설 극장이 없었고 경기장이나 광장에 목조 가설무대를 설치하여 공연하였다. 최초의 석조 극장은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 대왕이 건립한 것이다. 로마 극장은 그리스의 원형 극장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의 완전한 원형 오케스트라는 반원형으로 축소되었고, 무대(스카이나에 프론스)는 높고 넓어졌으며 화려한 기둥과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합창대가 사용하던 오케스트라 공간은 귀빈석으로 전환되었다. 극장은 평지에 건립되었으며, 좌석은 신분과 계급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었다.

배우와 의상

로마의 배우들은 대개 가면(페르소나)을 착용하고 연기하였다. 비극 배우는 굽이 높은 신발(코투르누스)을 신고 키를 돋보이게 하였으며, 큼직한 패드를 넣은 의상을 입었다. 희극 배우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의상을 착용하였다. 배우들의 사회적 지위는 낮았으며, 많은 경우 노예나 자유민 출신이었다. 여성 역할은 처음에는 남성 배우가 맡았으나 후기에는 여성 배우도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연극의 쇠퇴와 의의

로마 연극은 제정 시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검투사 경기, 전차 경주 등 더욱 자극적인 대중 오락에 밀려 연극의 순수 문학적·예술적 가치는 약화되었고, 무언극(판토미무스)과 같은 볼거리 위주의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로마 연극은 그리스 연극의 전통을 보존하고 변형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희극은 르네상스 시기 유럽 희극의 중요한 모델이 되었으며, 세네카의 비극은 엘리자베스 시대 비극,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극장 건축 양식 역시 르네상스 이후 유럽 극장 건축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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