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고다마 겐타로는 1852년 3월 21일 일본 스오 번(현재 야마구치현)의 하급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보신 전쟁에 참전하여 일찍이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프로이센 유학을 통해 서구의 선진 군사 지식을 습득했다.
1870년대 사쓰마의 난 진압에 참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육군성 관료로서 군제 개혁에 힘썼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는 제2군 참모장으로 참전하여 승리에 기여했다.
대만 총독 및 러일 전쟁 1898년, 그는 제4대 대만 총독으로 부임하여 대만의 식민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대만 총독부의 행정 개혁과 인프라 구축에 힘썼다. 대만 총독 재임 중에도 육군 대신, 내무 대신 등을 겸임하며 중앙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다마 겐타로의 가장 큰 업적은 러일 전쟁에서 발휘한 군사적 재능이다. 1904년 러일 전쟁 발발과 함께 만주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어 오야마 이와오(大山巌) 총사령관을 보좌했다. 그는 일본군의 전략 수립과 작전 지휘를 실질적으로 담당했으며, 여순 요새 공략과 봉천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뛰어난 지휘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이 열세에 놓였던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의 전략적 통찰력과 전술 구사는 일본군의 승리에 필수적이었다고 평가된다.
말년 및 평가 러일 전쟁 승리 후, 1906년에는 참모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전쟁 중의 과로와 지병으로 인해 그 해 7월 23일 54세의 나이로 급서했다.
고다마 겐타로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육군 근대화와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행정가로서의 능력과 군사 전략가로서의 탁월함을 겸비했으며, '메이지의 지장(智將)' 또는 '메이지 삼걸'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사망은 일본 육군에게 큰 손실로 여겨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군사 및 정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