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왕은 고대 한국의 삼국 시대 국가인 고구려(기원전 37년~서기 668년)의 군주를 지칭하는 칭호이다. 고구려의 정치 체제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 왕정이었다.
칭호의 변천 초기에는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등 다양한 호칭이 사용되었으나, 고구려의 경우 건국 초기부터 '왕(王)'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19대 광개토왕(廣開土王) 대에 이르러 '태왕(太王)'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장수왕, 문자왕 등도 태왕 칭호를 이어받았다. 중국 사서(『삼국지』 위서 동이전, 『수서』, 『당서』 등)에서는 고구려 군주를 '왕' 또는 '고구려왕'으로 표기하였다.
계승 방식 왕위 계승은 기본적으로 부자 상속(아버지에서 아들로)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초기에는 형제 상속이나 숙질 상속 사례도 확인된다. 왕위 계승 과정에서 귀족 세력(연나부, 소노부 등)의 추대나 쿠데타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왕권 강화와 함께 부자 상속이 정착되었다.
주요 국왕
- 동명성왕(주몽): 건국 시조.
- 태조왕(궁): 5부 통합과 관제 정비로 왕권 강화의 기틀 마련.
- 고국천왕: 선비족의 침입 격퇴, 진대법 실시.
- 미천왕: 낙랑군·대방군 축출로 한반도 북부 지배권 확보.
- 고구려국양왕(소수림왕): 불교 공인, 태학 설립, 율령 반포 등 국가 체제 정비.
- 광개토왕: 정복 사업으로 전성기 구축, '태왕' 칭호 사용.
- 장수왕: 평양 천도, 전성기 유지 및 대외 관계 안정.
- 영양왕·영류왕·보장왕: 수·당과의 전쟁(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 수행, 668년 보장왕 대에 멸망.
권한과 역할 국왕은 입법, 사법, 행정, 군사 전반의 최고 통치권자였다. 관직 임명권, 조세 징수권, 군대 통솔권, 외교 결정권 등을 행사하였다. 제사장(제천 의식 주관)으로서의 종교적 권한도 겸비하였다. 하부 구조로는 상대등(上大等)을 수반으로 하는 중앙 관료 기구와 지방 행정 조직(군·현)을 두어 통치하였다.
사료 고구려 국왕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유사』, 광개토왕릉비문, 중원고구려비문, 중국 측 사서(『삼국지』, 『후한서』, 『진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 일본 측 사서(『일본서기』) 등을 통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