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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원지

고간원지(叩諫院址)

고간원지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 위치한, 고려 시대 문신 문극겸(文克謙, 1122~1189)을 모신 사당 유적이다. 1984년 7월 2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지정번호가 폐지된 뒤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명칭의 의미와 유래

'고간(叩諫)'이라는 명칭은 중국 은(殷)나라 제후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칠 때 말고삐를 부여잡고 간언하였다는 고사(叩馬而諫)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院)'은 원우(院宇), 곧 사우(祠宇)를 뜻한다.

역사적 배경

문극겸은 고려 의종·명종 대의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좌정언(左正言)에 제수되었다. 권력을 휘두르던 환관 백선연(白善淵)과 탐독을 일삼던 역술인 영위(榮僞) 등을 탄핵하다 도리어 황주판관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이후 명종 즉위 후 이의방의 추천으로 우승선·어사중승 등에 올라 많은 문신을 화(禍)에서 구하고, 재상이 된 뒤에는 상장군을 겸하는 등 무신정권기에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려 후기 문인 이인로(李仁老)의 『보한집(補閑集)』에 따르면, 문극겸은 의종이 음악과 여색에 빠지고 놀이만 즐기자 소를 올려 간언하였으나 의종이 듣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1173년(명종 3) 겨울 공주 유구역(維鳩驛)을 수리할 때 화공이 침실 서쪽 벽에 흰옷을 입고 삿갓을 쓴 말 탄 사람이 산길을 따라 처량하게 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후 송광사의 무의자(無衣子) 혜심(慧諶)이 이 그림을 보고 "간신(諫臣)이 서울을 떠나가는 그림"이라고 하여 그 주인공이 문극겸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간신거국도(諫臣去國圖)」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17세기 말까지 전해졌다.

건립과 변천

고간원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충숙공사실기(忠肅公事實記)』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고간원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고간원이력(叩諫院履歷)」에 따르면 1792년(정조 16) 홍수로 건물이 무너졌으며, 1851년(철종 2)에 앞면의 원판을 새롭게 새겨 유구역 누벽에 붙였다고 한다. 이후 1907년에 원우(院宇)를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14년에 완성하였고, 편액과 제현(諸賢)의 시문 현판들을 설치하였다. 1987년부터 1989년에 걸쳐 새로 단장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쳤다.

구성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叩諫院)'이라는 현판이 걸린 단칸 맞배집 건물을 비롯하여, 문숙공신도비(文肅公神道碑), '태선문(泰先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忠肅先祖遺德追慕碑), 사당인 충숙공영당(忠肅公影堂), 그리고 문극겸의 묘소 등이 있다. 문극겸의 자(字)는 덕병(德柄),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고간원지는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에 세거하는 남평문씨(南平文氏)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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