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고 (시호)

고(시호)

개요

고는 시호(諡號)에 사용되는 글자이다. 한국 한자음이 같은 두 글자가 존재한다. 하나는 考(생각할 고)이고 다른 하나는 高(높을 고)이다. 두 글자는 모두 시호로 사용되지만 그 의미와 근거 문헌이 다르다.

考(고)

考는 《일주서(逸周書)》의 〈시법해(諡法解)〉에서 그 의미가 정의된 글자이다. 해당 문헌에 따르면 考는 '병덕불회(秉德不回)' 즉 덕을 지니고 돌아서지 않음, 그리고 '대려행절(大慮行節)' 즉 깊이 생각하여 행동에 절도가 있음을 일컫는 시호로 사용된다. 한편 〈시법해〉에서는 考를 사용한 시호의 예로 고왕(考王), 고공(考公) 등이 존재하며,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 군주들에게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高(고)

高는 《일주서》 〈시법해〉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으나, 최상급의 의미로 쓰이는 시호 글자이다. 시법을 설명하는 여러 고전 문헌들에서도 高의 구체적인 정의는 확인되지 않지만, 받는 대상의 위상을 최고로 높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高는 묘호(廟號)에 쓰이는 태(太) 또는 세(世)와 마찬가지로, 받는 사람을 극도로 높이는 성격을 지닌 시호이다. 대부분 개국 군주(創業君主)로서 또는 개국 군주의 조상으로서 추존(追尊)되었을 때 이 시호를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왕보다는 황제에게 주로 붙는 경향이 있다.

주요 사용 사례

  • 고황제(高皇帝):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시호 '고황제'를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유방의 묘호는 태조(太祖)였으나 사마천의 《사기》에서 '고조'라고 일컬어진 까닭에 흔히 한고조(漢高祖)로 알려졌다. 그 외에도 중국과 한국의 여러 황조에서 개국 군주에게 고황제의 시호가 사용된 사례가 있다.
  • 고왕(高王): 발해의 창업 군주인 대조영(大祚榮)이 '고왕'의 시호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 고왕(考王): 考를 사용한 사례로, 주나라 및 춘추시대 제후국의 여러 군주에게 사용되었다.
  • 고공(考公): 考를 사용한 시호로, 고대 중국 제후국의 국공(國公)들에게 사용된 사례가 있다.

시호 제도의 배경

시호 제도는 중국 주나라 중기(기원전 9세기경)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왕이나 고관 등 공적·덕망이 높은 인물이 사망한 뒤 행적을 평가하여 붙이는 칭호이다. 한국에서는 신라 법흥왕 원년(514년) 죽은 부왕에게 '지증(智證)'이라는 시호를 올린 기록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을 거쳐 시호 제도가 이어졌으며,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의 수와 의미는 시대에 따라 정비·확장되었다.

문체 및 참고

고(시호)는 실제로 동아시아 역사 기록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실재하는 개념으로, 위키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공신력 있는 자료에서 그 존재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발해 고왕 대조영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와 《신당서》 등 중국 정사에서도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한편 高와 考의 정확한 시법(諡法)적 정의 차이에 대해서는 일부 문헌 해석상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