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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

경혜공주(敬惠公主, 1436~1473)는 조선 제5대 국왕 문종(文宗)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녀이며, 제6대 국왕 단종(端宗)의 유일한 동복 누나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봉호는 경혜공주(敬惠公主)이다. 출생 당시 아버지 문종이 왕세자였던 관계로 처음에는 현주(縣主)로 책봉되었다가, 어머니 권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면서 평창군주(平昌郡主)로 승격되었고, 문종 즉위 후 경혜공주로 책봉되었다.

1450년(세종 32) 해주 정씨(海州鄭氏)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과 혼인하였다. 문종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양덕방(陽德坊)에 경혜공주의 살림집을 마련해 주었는데, 인가 40여 채가 철거될 정도로 큰 규모여서 사헌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다.

1452년 문종이 사망하고 동생 단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숙부 수양대군(후일 세조)이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혜공주의 집은 쿠데타의 현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남편 정종은 단종과의 관계를 문제삼아 유배되었고, 경혜공주는 남편을 따라 유배지로 내려갔다.

1456년 사육신 사건(단종 복위 운동)이 발발하면서 정종은 더 먼 곳으로 유배되었고, 경혜공주는 그를 따라 전라도 광주(光州)로 내려가 그 해 아들 정미수(鄭眉壽)를 낳았다. 1461년(세조 7) 정종은 모반 혐의로 능지처참(凌遲處斬)이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세조는 경혜공주에 대해서는 연좌(緣坐)를 적용하지 않고 한양으로 불러들였으며, 집과 토지, 노비를 지급하였다. 이후 예종과 성종 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다.

《성종실록》에는 정종 사후 경혜공주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인 기간이나 출가한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경혜공주는 1473년(성종 4) 12월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 3일 전에는 아들 정미수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분재기(分財記)를 직접 작성하였는데, 이 문서에는 '경혜공주지인(敬惠公主之印)'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찍혀 있어 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발견되어 주목받았다.

아들 정미수는 이후 중종반정에서 공을 세워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고, 남편 정종은 영조 대에 신원(伸寃)되어 정조 대에 장릉(莊陵) 배식단(配食壇)에 배향되었다. 경혜공주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해 있으며, 남편 정종의 가묘(假墓)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한편 경혜공주가 남편 사후 순천(順天)의 관비(官婢)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려실기술》 등 야사(野史)에 전해지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없으며 정종 처형 직후 경혜공주가 한양으로 소환된 점 등으로 미루어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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