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경혜공주는 1436년(세종 18년) 세종의 맏아들인 왕세자 향(훗날 문종)과 왕세자빈 권씨(훗날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세자 내외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나, 1441년(세종 23년) 어머니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하여 외할머니인 해주 최씨 손에서 길러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 판돈녕부사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鄭悰)에게 하가(下嫁)하여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졌다. 문종은 공주를 매우 아꼈기에 사위 정종에게도 많은 재물과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문종은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어린 동생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공주의 삶은 비극적인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1453년(단종 원년)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단종의 보필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단종은 왕위에서 물러나고 상왕(上王)이 되었다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었다. 이때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은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아 1455년(세조 원년) 금성대군과 함께 노산군 복위 모의죄로 유배되어 처형당했다.
남편이 처형된 후 경혜공주와 그 아들은 연좌되어 관노(官奴)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녀는 천한 신분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들 정미수(鄭眉壽)를 키우며 힘든 삶을 이어갔다. 세조는 단종의 누이라는 점과 그녀의 비참한 처지에 연민을 느꼈는지, 1457년(세조 3년) 그녀의 노비 신분을 면해주고 다시 공주의 품계를 회복시켜주었다. 이후 그녀는 비구니가 되어 불문에 귀의하기도 했다.
최후 경혜공주는 1473년(성종 4년)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아들 정미수는 훗날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을 떨쳐 세조 때 다시 관직에 올랐으며, 성종 대에 크게 출세하여 우의정(右議政)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로써 비참했던 경혜공주 일가의 명예는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가족 관계
- 부왕: 문종
- 생모: 현덕왕후 권씨
- 남동생: 단종
- 부마: 영양위 정종(鄭悰)
- 아들: 정미수(鄭眉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