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경주읍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부동 일대에 남아있는 조선 시대의 읍성이다. 고려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조선 시대에 보수 및 증축되었으며, 경주의 행정 중심지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남아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역사

  • 축조 및 개축: 경주읍성은 신라의 왕경이었던 경주가 고려시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변화하면서, 고려 문종 20년(1066년)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 태종 10년(1410년)에 대대적으로 개축되었으며, 당시 성곽의 둘레는 약 1,930m, 높이는 4.3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 임진왜란과 이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함락되기도 했으나, 병영과 관아를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다. 숙종 34년(1708년)에는 대규모 보수 공사가 있었으며, 당시에는 동쪽의 향일문(向日門), 서쪽의 망미문(望美門), 남쪽의 징례문(澄禮門), 북쪽의 공신문(拱辰門) 등 4개의 성문과 옹성(甕城), 치성(雉城) 등의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 훼손: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을 이유로 성벽과 성문이 대부분 철거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구조 및 현황

경주읍성은 평지를 에워싸는 평지읍성으로, 당시 경주의 관아와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성벽은 대부분 흙으로 쌓아올리고 겉면을 돌로 마감하는 방식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동쪽 성벽과 북쪽 성벽의 일부, 그리고 북문인 공신문 등이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을 통해 동문지, 동성벽, 북성벽, 북문(공신문) 등이 단계적으로 복원되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의의

경주읍성은 신라 왕경의 역사적 맥락과는 다른,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중심지의 방어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평지읍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과 보존 상태를 통해 당시의 축성 기술과 도시 방어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경주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시민들에게 과거의 유산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문화재 지정

  • 경상북도 기념물 제14호

참고 항목

  • 월성 (경주)
  • 읍성
  • 경주 동부동 삼층석탑 (경주읍성 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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