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慶元, 1195년~1200년)은 중국 남송(南宋) 제4대 황제인 영종(寧宗) 조확(趙擴)이 사용한 첫 번째 연호이다. 영종은 1194년 12월에 즉위한 후, 이듬해인 1195년 2월 12일(율리우스력)부터 연호를 경원으로 개원하여 1200년까지 약 6년간 사용하였다.
경원이라는 연호는 북송 시기 인종(仁宗)의 연호인 경력(慶曆)과 철종(哲宗)의 연호인 원우(元祐)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와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에 기록된 개원 조서에서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 경력과 원우의 치세를 본받겠다"는 뜻을 밝힌 데서 유래한다.
경원 연간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은 경원의 당금(慶元黨禁)이다. 이 시기에는 영종 옹립에 공을 세운 외척 한탁주(韓侂胄)가 재상 조여우(趙汝愚)를 축출하고, 주희(朱熹) 등 도학파(道學派) 학자들을 탄압하여 소위 '위학(僞學)'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많은 유학자들이 관직에서 축출되고 학문 활동이 억압받았다.
또한 경원 연간에는 통천력(統天曆)이 시행되었고, 일본과 고려 상인의 동전 반출이 금지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경원 6년(1200년) 12월 21일(율리우스력 1201년 1월 27일)에 영종은 연호를 가태(嘉泰)로 다시 개원하였다.
동시대 주요 연호
- 금(金)나라: 명창(明昌), 승안(承安)
- 서하(西夏): 천경(天慶)
- 베트남: 티엔뜨자투이(天資嘉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