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방죽(景陽防―)은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옛 시청 일대에 있었던 인공 호수(저수지)이다. '경양(景陽)'이라는 이름은 고려·조선 시대 역참(驛站)이었던 경양역(景陽驛)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경양지(景陽池), 경양호(景陽湖), 경호(鏡湖), 금교제(金橋堤), 금교방죽, 서방지(瑞坊池), 연지(蓮池) 등이 있다.
축조 배경 및 시기
경양방죽은 1440년(조선 세종 22년) 세종의 농공정책의 일환으로 전라도 감사 김방(金倣)이 2~3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고 전해지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조탄보(棗灘洑)를 광주천에 설치하여 수위를 높이고, 광주천에서 광주읍성 해자, 동계천을 거쳐 경양방죽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개설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 시설로 기능하였다. 광주천 부근이 가장 높고 경양방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도록 설계되었다.
규모와 특징
경양방죽은 호남 지역 최대의 인공 저수지 중 하나로, 면적이 약 6만 5천 평(약 21만 ㎡)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두 개의 인공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민에게는 여름에는 뱃놀이,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되는 등 오랜 기간 휴식처와 놀이터 역할을 하였다.
매립과 소멸
경양방죽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에 1차 매립 공사가 진행되면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고, 이때 인공섬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유입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경양방죽 주변은 생활하수 유입으로 환경이 악화되었다. 1960년대 말 광주시의 시가지 정비 및 확장 과정에서 방죽 옆 신안동의 태봉산(胎峰山)을 헐어 조달한 흙으로 2차 매립 공사가 진행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태봉산 역시 경양방죽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졌다.
문화유산
경양방죽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둑방길 형태의 도로가 남아 있으며, 아스팔트 도로 위에 황톳빛으로 둑방길이었음을 표시해 놓았다. 축조 당시와 관련된 개미 설화를 바탕으로 도로에 개미 문양이 그려져 있고, 주변 담장에는 경양방죽 관련 사진과 이야기를 벽화로 조성하여 역사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