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운영한 관립 공업 전문학교이다. 이 학교는 대한제국 시기 설립된 공업전습소(工業專習所)가 승격되어 성립되었으며, 1940년대 초반까지 한반도에서 유일한 고등공업교육기관이었다.
기원과 변천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기원은 1899년 대한제국 정부가 상과(商科)와 공과(工科)를 갖춘 상공학교(商工學校)를 설립한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학교는 예산 결손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1904년 일본 제국에서 들여온 차관으로 농과를 가설하여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로 재개교하였다. 이후 예산 문제로 운영이 다시 어려워지자, 1906년 통감부와 대한제국의 공업고문인 히라가 박사의 기획에 따라 농상공학교의 공과가 분리·확대되어 1907년 2월 공업전습소 관제가 반포되었고, 같은 해 4월 21일 공업전습소가 개교하였다.
공업전습소는 1916년 4월 1일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로 승격되어 관립 전문학교가 되었다. 이후 1922년 4월 1일 경성고등공업학교로 개칭되었고, 다시 1944년 4월 6일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경성광산전문학교와 함께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공학계에 흡수되었으며,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재편되었다.
교육 내용과 학과 구성
경성고등공업학교의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학과로는 방직과, 토목과, 건축과, 광산과, 응용화학과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응용화학과에는 요업, 염색, 응용화학의 세부 과목이 있었다. 1937년에는 전기공학과와 기계과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1939년에는 광산과가 분리되어 경성광산전문학교가 별도로 설립되었고, 1941년에는 이과양성소(理科養成所)가 부설되어 수학, 물상, 화학, 생물 중등교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1944년에는 원동기과, 전기화학과, 전기통신과가 추가 설치되었다.
입학 자격은 조선인의 경우 16세 이상으로 고등보통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였으며, 일본인(내지인)의 경우 17세 이상으로 중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였다. 입학 경쟁은 매우 치열하여, 1927년에는 약 6.5:1, 1929년에는 약 4.8:1의 경쟁률을 기록하였다. 조선교육령 개정 이전에는 조선인을 전체 정원의 2/3가량 선발한다는 내규가 있었으나, 교육령 개정 이후 그러한 내규가 폐지되면서 조선인의 입학이 크게 어려워졌다.
역사적 의의
경성고등공업학교는 1940년대까지 조선의 유일한 고등공업기관이었기 때문에 다른 전문학교에 비해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배출된 건축가와 공학자의 절대 다수가 이 학교 출신이었으며, 졸업생들은 해방 이후 남북한의 공업 분야와 공학계를 주도하였다. 특히 경성고등공업학교 출신의 건축가들은 21세기까지 남한 건축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현대 한국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교사(校舍)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교사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숭동에 위치해 있었다. 이 자리는 원래 대한제국 전환국 기계시험소가 있던 곳으로, 1906년 통감부 건축과의 설계에 따라 1908년에 공업전습소 교사(본관)와 기숙사, 관사가 완성되었다. 교사는 르네상스식 목조 건물로, 대한제국 때 건설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에는 상공부 국립공업연구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