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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일제강점기)

개요
경상북도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이 통치한 한반도 남동부 지역을 뜻한다. 일본 정부는 조선을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 하에 두고, 기존 조선의 행정구역을 일본식 행정구역체계에 맞추어 재편하였다. 그 결과 경상북도는 일본식 명칭인 ‘慶尚北道(게이쇼우호쿠도, Keishōhoku-dō)’ 로 불렸으며, 현재의 대한민국 경상북도와 대체로 동일한 영역을 차지하였다.

행정구조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은 ‘도(道)’‑‘군(郡)’‑‘현(縣)’‑‘읍·면·리’ 체계로 구성되었다. 경상북도(慶尚北道)에는 당시 주요 도시와 군·현이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다.

구분 주요 행정구역 (당시 명칭) 현재 동일 또는 유사 지역
도청소재 영주(永州) 영주시
주요 시·군 안동(安東), 포항(浦項), 경주(慶州), 구미(龜尾), 김천(金川) 등 현재의 안동시·포항시·경주시·구미시·김천시 등
기타 군·현 예성군, 상주군, 의성군, 청송군 등 현재의 상주시·의성군·청송군 등

각 현(縣)은 다시 읍·면·리로 하위 구분되었으며, 행정관리는 일본인 관료와 협력관계에 놓인 조선인 관리가 담당하였다.

경제·사회적 특징

  • 농업: 경상북도는 전통적으로 벼농사와 쌀 생산이 활발했으며, 일제는 이를 기반으로 식량 수탈 정책을 전개하였다.
  • 산업: 포항·울산 일대는 조선소와 철강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일본 기업이 설립·운영했다. 또한, 산악 지형을 활용한 목재·광물 채굴이 이루어졌다.
  • 교통: 경상북도는 동해안을 따라 일본이 건설한 주요 철도(경부선·동해선)와 도로망이 확충되어 물자 이동과 군사 이동에 활용되었다.
  • 교육·문화: 일본식 학교와 교육기관이 설립돼 일본어 교육이 강화되었으며, 동시에 일본어와 한자를 병용한 관문(官吏) 양성이 진행되었다.

정치·민족운동
일제강점기 동안 경상북도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안동·경주·포항 지역에서는 비밀결사와 무장투쟁이 전개되었으며, 3.1 운동(1919년) 때도 지역 차원의 시위와 독립 선언이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된 주요 인물로는 김원봉, 이재혁, 안병근 등이 있다.

해방 이후 변화
1945년 광복 이후 경상북도는 남한 정부에 의해 기존 일제식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재편되었다. 도청은 영주에서 대구로 이전(1946년)했으며, 1995년에는 도청을 대구에서 경주시로 이전하면서 현재와 같은 행정 체계가 확립되었다.

어원
‘경상(慶尚)’은 고대 삼한 시대에 있던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지역을 통합한 명칭이며, ‘북도’는 그 지역이 한반도 동북부에 위치함을 나타낸다. 일제는 이를 일본식 발음 ‘Keishōhoku-dō’로 표기하였다.

참고

  • 『조선총독부 연감』(조선총독부, 1930-1945)
  • 『한국근현대사』 (대한민국 교육부, 2000)
  • 『일제 강점기 행정지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5)

(위 내용은 역사적 기록에 기반한 객관적 서술이며, 별도 확인이 필요한 상세 데이터는 해당 사료를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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