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교(永濟橋)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 법궁인 경복궁(景福宮)의 금천(禁川) 위에 놓인 석조 홍예교(石造虹蜺橋)이다. 경복궁의 진입 축인 광화문(光化門), 흥례문(興禮門), 근정문(勤政門)을 따라 들어갈 때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의 마당에 위치하며, 궁역 북쪽 백악(白岳)에서 흘러내린 물이 궐내 각사(闕內各司)와 경회루(慶會樓) 영역을 감돌아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는 금천을 가로지른다.
영제교는 경복궁이 창건된 1395년(태조 4년) 9월에 처음 조성되었으며, 당시 기록에는 '석교(石橋)'로 표현되었다. 이후 1426년(세종 8년) 10월에 '영제(永濟)'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명명되었다. '영제'라는 한자어는 '길이 건넌다' 또는 '영원히 구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약 13m, 폭 약 10m이며, 하부에는 두 개의 홍예(아치)가 조성되어 있다. 상부에는 귀틀을 형성하여 교량을 설치하였고, 교량 상판 중앙부에는 근정전을 향하는 어도(御道)가 연속적으로 설치되었다. 난간 기둥과 금천 어구에는 서수상(瑞獸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난간 석주의 서수는 용의 모습이며 금천 어구 상단의 서수는 세 갈래로 갈라진 뿔이 있는 모습이다. 이 서수상은 조선 후기 학자들에 의해 천록(天祿)이나 기린(麒麟)으로 이해되었으며, 벽사(辟邪)의 의미로 영제교와 금천이 갖는 경계의 역할을 장식적으로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영제교는 궁중 의례에서도 중요한 기준점 역할을 하였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조하(朝賀)와 조참(朝參) 시 백관의 행례 위치가 영제교를 기준으로 나뉘었는데, 북쪽에는 문무관 1품에서 2품까지, 남쪽에는 3품 이하의 관원이 도열하였다.
1915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복궁에서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가 개최되면서 흥례문과 행각 등이 철거되었고, 이때 영제교도 해체되어 조선총독부 박물관 근처에 부재가 보관되었다. 이후 1950년대에 임시로 수정전(修政殿) 앞에 설치되었고, 1970년대에는 건춘문(建春門) 안쪽에 재설치되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흥례문 권역 복원 당시 원래의 위치로 복원되었으며, 2001년 10월 26일 일반에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