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융(犬戎)
견융은 고대 중국 주나라(周) 시기 서쪽 및 북서쪽 변방에 거주하던 유목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융(戎)'은 당시 서방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용어였으며, 견융은 그중에서도 세력이 강력했던 집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개요 견융의 명칭에서 '견(犬)'은 개를 의미하며, '융(戎)'은 병기 또는 서쪽의 이민족을 의미한다. 이는 당시 중원 왕조가 변방 민족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멸칭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당 민족의 토템이나 상징과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들은 중국 서북부 지역에서 유목과 수렵을 기반으로 생활하며 주나라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역사적 활동 역사적으로 견융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대목은 서주(西周)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771년, 주나라 유왕(幽王)이 애첩 포사(褒姒)를 총애하여 왕후와 태자를 폐위시키자, 이에 반발한 신후(申侯)가 견융의 군대를 불러들여 주나라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유왕은 살해되었고 주나라의 수도인 호경(鎬京)은 함락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나라는 수도를 동쪽의 낙읍(洛邑)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서주 시대가 끝나고 동주(東周)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민족적 계보 견융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적다. 한대(漢代)의 사학자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견융을 흉노(匈奴)의 선조 중 하나로 기술하기도 했으나, 현대 사학계에서는 이를 확정된 사실로 보지 않는다. 이후 진(秦)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정벌하거나 흡수하면서 점차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비중이 감소하였다.
특징 견융은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 전술을 사용하였으며, 농경 정주 민족인 주나라와는 상이한 생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주나라 및 이후 중국 왕조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며, 견융 스스로 남긴 고유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이들의 내적 문화나 언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