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일본어: 芸者)는 일본의 전통 예능을 익혀 연회나 모임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여성 공연 예술가이다. '게이샤'라는 명칭은 '예술'을 뜻하는 한자 芸(게이)와 '사람'을 뜻하는 者(샤)의 결합으로, 문자 그대로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명칭과 지역적 차이
게이샤는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교토와 가나자와를 비롯한 서일본 지역에서는 '게이코'(芸子)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니가타 지역에서는 '게이기'(芸妓)라고 부른다. 견습 게이샤는 교토에서 '마이코'(舞妓, 춤추는 아이)라고 하며, 도쿄에서는 '한교쿠'(半玉, 절반의 보석)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게이샤가 활동하는 지역을 '하나마치'(花街, 꽃마을)라고 하며, 이들이 속한 사회와 세계를 '카류카이'(花柳界, 화류계)라고 지칭한다.
역사
게이샤의 기원은 에도 시대(1603~186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게이샤가 등장하기 이전인 헤이안 시대(794~1185년)부터 시라뵤시(白拍子)라 불리는 여성 예능인이 존재했으나, 현대적 의미의 게이샤는 그보다 훨씬 이후에 등장하였다. 초기의 게이샤는 남성이었으며, 이들은 '호칸'(幇間) 또는 '다이코모치'(太鼓持ち)라 불리며 유곽(遊廓)에서 음악과 재치 있는 대화로 손님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최초의 여성 게이샤는 1751년경 에도(현 도쿄)의 후카가와 지역에서 등장한 것으로 기록된다. 키쿠야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샤미센 연주자이자 무용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여성 게이샤가 급속히 증가하여 1800년경에는 거의 모든 게이샤가 여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에도 시대 막부는 게이샤의 매춘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예능인으로서의 활동만을 허용하였다. 이 시기에는 게이샤가 기모노를 쉽게 벗지 못하도록 오비(띠)를 뒤로 묶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1750년대 이후 게이샤는 유녀(오이란)보다 인기를 얻게 되었고, 점차 유녀는 쇠퇴하였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1872년 정부는 '게이쇼기 해방령'을 발포하여 게이샤의 자유 계약 활동을 허용하였고, 이 시기부터 게이샤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20년대에는 일본 전역에 약 80,000명의 게이샤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모든 하나마치가 폐쇄되었고 대부분의 게이샤가 공장 등에서 전쟁 노력에 동원되었다. 전후 게이샤 수는 급감하였으며, 1956년 매춘 방지법 시행 이후 미즈아게(처녀성 경매)와 같은 관행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수련 과정
게이샤가 되기 위한 전통적인 수련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는 '시코미'(仕込み)로, 오키야(게이샤 숙소)에서 가사 노동을 하며 기초를 배우는 시기이다. 이후 '미나라이'(見習い) 단계에서는 선배 게이샤를 따라 연회에 참석하여 관찰을 통해 학습한다. 그 다음은 '마이코'(견습 게이샤) 단계로, 교토에서는 약 5년, 도쿄에서는 약 6개월에서 1년간의 수련을 거친다. 마이코는 화려한 기모노와 두꺼운 흰 분칠 화장, 전통 머리 장식이 특징이다. 수련을 마치면 '에리가에'(襟替え, 깃 돌리기)라는 의식을 통해 정식 게이샤로 승격된다.
예술과 활동
게이샤는 전통 일본 춤(일본무용), 샤미센(삼현악기) 연주, 전통 노래, 다도, 문학, 시, 대화술 등 다양한 예술에 능숙하다. 이들은 주로 찻집(오차야)이나 전통 일식당(료테이)에서 열리는 연회(오자시키)에 참석하여 손님을 접대한다. 게이샤의 고용 비용은 '하나다이'(花代, 꽃값) 또는 '교쿠다이'(玉代, 보석값)라고 부른다.
현대의 게이샤
현대 일본에서 게이샤의 수는 크게 감소하여 약 1,000명에서 2,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 지역은 교토(특히 기온, 폰토초, 미야가와초, 가미시치켄, 기온히가시의 다섯 하나마치)와 도쿄(신바시, 아사쿠사, 가구라자카, 아카사카, 무코지마, 요시초)이다. 현대 게이샤는 전통 문화의 수호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일부는 공개 무용 공연(오도리)을 통해 일반 관광객에게도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게이샤에 대한 오해
게이샤는 흔히 매춘부로 오해되나, 이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인식이다. 게이샤는 예능을 주된 직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인이며, 법적으로 매춘 행위는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일부 게이샤가 역사적으로 성매매에 관여한 사례가 존재하나, 이는 직업의 본질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군 점령 시기에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를 '게이샤 걸'이라 칭하면서 서구 사회에서 이러한 오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