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폰 헤르틀링

게오르크 폰 헤르틀링(독일어: Georg von Hertling, 1843년 8월 31일 – 1919년 1월 4일)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으로, 1917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제국의 재상(Reichskanzler)을 역임했다. 그는 독일 중앙당(Zentrumspartei) 소속으로는 최초로 제국 재상이 된 인물이다.

생애 및 초기 경력: 게오르크 폰 헤르틀링은 1843년 8월 31일 헤센 대공국의 다름슈타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뮌헨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가톨릭 철학에 깊이 몰두했다. 1867년에는 본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1880년에는 뮌헨 대학교의 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신 스콜라 철학의 주요 지지자 중 한 명이었으며, 가톨릭 학술 협회인 괴레스 협회(Görres-Gesellschaft)의 공동 설립자이자 오랜 회장이었다.

정치 경력: 헤르틀링은 1875년부터 1890년까지, 그리고 1893년부터 1912년까지 제국의회(Reichstag)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독일 중앙당의 보수적인 가톨릭파에 속했으며, 1909년부터 1912년까지 중앙당의 의회 그룹을 이끌었다. 1912년에는 바이에른 왕국의 수상(Ministerpräsident)으로 임명되어 1917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바이에른에서 안정적인 정부를 이끌며 의회와 군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제국 재상: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당시 재상 게오르크 미하엘리스가 사임하자 헤르틀링은 황제 빌헬름 2세에 의해 독일 제국의 재상(Reichskanzler)이자 프로이센 왕국의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74세의 고령으로 재상직에 올랐으며, 의회 다수당 출신으로는 최초의 재상이었다.

재상으로서 헤르틀링은 전쟁의 격동 속에서 독일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그는 군부(특히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수와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서 제한적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내각은 전쟁의 지속을 주장하는 군부와 평화 협상을 요구하는 의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는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와의 평화를 달성했지만, 서부 전선에서는 여전히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전세가 독일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국내외적으로 평화 협상과 정치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자, 헤르틀링은 더 이상 정부를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의회 개혁 요구에 대한 군부의 반대에 부딪혀 1918년 9월 30일 재상직에서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막스 폰 바덴 공(Prince Max of Baden)이 임명되었고, 이는 독일 제국의 마지막 재상이 되었다.

말년: 재상직에서 물러난 후, 게오르크 폰 헤르틀링은 몇 달 뒤인 1919년 1월 4일 바이에른의 루폴딩에서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복잡한 전시 상황 속에서 독일을 이끈 보수 가톨릭 정치인이자 학자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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