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데르팅거(Georg Dertinger, 1902년 12월 25일 ~ 1968년 1월 21일)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정치인이다.
베를린의 중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법학과 경제학을 간단히 공부한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마그데부르크 민중신문(Magdeburger Volkszeitung)과 국민주의적 신문 슈탈헬름(Der Stahlhelm)의 편집자로 일하였으며, 이후 슈탈헬름의 엄격한 우파 노선과 결별하였다. 우파 국민주의 정당인 독일국가인민당(DNVP)에 동조하였고, 프란츠 폰 파펜 총리의 정치적 동아리 일원이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된 이후, 독일과 교황청 간의 협약(라이히스콩코르다트) 체결을 위해 파펜을 수행하여 로마를 방문하였다.
1934년 베를린으로 돌아와 외국 신문에 뉴스를 제공하는 중개업체 딘스트 아우스 도이칠란트(Dienst aus Deutschland)의 발행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 소련군 점령지에서 기독교 민주연합(CDU)을 공동 창립하였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동독 기민련의 서기장, 1949년부터 1953년까지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독일통일사회당(SED)과의 협력 노선을 지지하였으며, 1947년 12월 축출된 보다 독립적인 성향의 당수 야코프 카이저(Jakob Kaiser)를 반대하였다. 또한 동독 문화협회에 가입하여 감독 위원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9년 10월 11일, 오토 그로테볼 내각에서 동독의 초대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50년에는 폴란드 인민공화국과 오데르-나이세 조약을 체결하여 동독과 폴란드 간의 국경을 확정하였다.
1953년 1월 15일 체포되어 이듬해 스파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유죄 판결을 받고 15년간의 강제 노동을 선고받았다. 1964년 사면되었으며, 석방 후 사망 전까지 로마 가톨릭교회 성 베노 출판부(St. Benno-Verlag)에서 일하였다. 1968년 1월 21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