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러시아의 혁명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도입하고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애 게오르기 플레하노프는 1856년 러시아 탐보프 현의 작은 마을에서 하급 귀족 출신 농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산학교에 재학 중 혁명 운동에 가담했으며, 초기에는 러시아의 농민 공동체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인민주의(나로드니키) 운동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그러나 1880년 서유럽으로 망명한 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작을 접하고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했다. 188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조직인 '노동 해방단(Освобождение труда, Emancipation of Labor)'을 창설하여,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인민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데 힘썼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저작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 창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당의 첫 프로그램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열될 당시, 처음에는 양측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 했으나, 점차 멘셰비키 진영에 가담하여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며, 우선 자본주의 발전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상과 공헌 플레하노프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를 정초했다. 그의 주요 저작인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1895) 등에서 그는 역사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과 개인의 역할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역사의 진보가 단순한 우연이나 위인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철학과 미학 분야에서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시도하여,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제국주의에 맞선 러시아의 조국 수호론(defensism)을 지지했으며,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로 귀국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 혁명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며, 러시아 사회가 아직 사회주의 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이 결국 러시아의 발전을 저해하고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망과 유산 10월 혁명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1918년 5월 30일 핀란드 테리요키(현재 러시아 젤레노고르스크)에서 사망했다. 비록 그는 말년에는 볼셰비키와 대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으나,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하고 그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서 그의 공헌은 지대하다. 그의 저작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역사 이론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으며, 레닌을 비롯한 많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초기 마르크스주의 교육의 원천이 되었다.

주요 저서

  • 『사회주의와 정치 투쟁』 (Социализм и политическая борьба, 1883)
  • 『우리들의 이견』 (Наши разногласия, 1885)
  •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 (К вопросу о развитии монистического взгляда на историю, 1895)
  •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의 역할에 대하여』 (К вопросу о роли личности в истории, 1898)
  • 『예술과 사회』 (Искусство и общественная жизнь,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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