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루시아(그리스어: γερουσία, Gerousia)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장로회(원로원)이다. 이는 스파르타 정치 체제의 주요 기관 중 하나로, 입법·사법·감독 기능을 수행한 권위 있는 기구였다. 게루시아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늙은이"를 뜻하는 '게론(γέρων)'에서 유래하여 "장로들의 회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성
게루시아는 총 30명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28명은 '게론테스(γέροντες)'라 불리는 선출직 장로들로, 만 60세 이상의 스파르타 정식 시민(스파르티아테) 중에서 선출되어 종신 재임하였다. 나머지 2명은 스파르타의 두 왕으로, 나이에 관계없이 출생에 따라 당연직으로 참여하였다. 장로 선출은 목표소 발성 투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후보자들이 차례로 민회 앞을 지나가면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고, 밀폐된 건물 안에 있는 심사 위원들이 소리의 크기를 판정하여 선출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선출 방식을 "어린아이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장로 자격은 실질적으로 소수의 귀족 가문에 국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법적 제한이라기보다 사실상의 독점이었던 것으로 학계에서 논의된다.
역할과 권한
게루시아는 주로 세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입법적 기능으로, 게루시아는 민회(아펠라)에 상정할 안건을 사전 심의하는 '프로불류시스(probouleusis)'의 권한을 가졌다. 법안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게루시아의 심의와 승인을 거쳐 민회에 제출되어야 했다. 또한 게루시아는 법률 수호권(노모필라키아, nomophulakia)을 지녀 민회에서 통과된 결정이 전통적 규범에 부합하는지를 감시하고, 경우에 따라 민회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 거부권이 실제로 행사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둘째, 사법적 기능으로, 게루시아는 스파르타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최고 법원이었다. 살인 사건을 비롯한 중대 사건을 관할하였으며, 스파르타 왕도 예외가 아니어서 왕이 기소될 경우 게루시아가 재판에 관여하기도 했다. 기원전 403년 파우사니아스 왕에 대한 재판에서는 28명의 장로, 5명의 에포로이, 그리고 다른 왕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셋째, 감독 기능으로, 게루시아는 왕을 포함한 스파르타의 주요 정치 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재판 권한을 통해 외교·군사 정책 결정에도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역사
게루시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귀족 자문회의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으로 게루시아는 기원전 7세기경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가 제정한 대 레트라(대 선언, Great Rhetra)에 의해 확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플루타르코스는 리쿠르고스의 많은 개혁 중 게루시아의 창설이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고전기 동안 게루시아는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게루시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 기원전 227년 클레오메네스 3세의 개혁으로 게루시아의 권한은 크게 축소되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게루시아가 사실상 폐지되고 새로운 기관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 시대의 스파르타에서 게루시아가 계속 존재했다는 비문 기록이 다수 확인된다. 이 시기에는 장로의 임기가 종신에서 1년으로 단축되고, 인원도 23명으로 감소했으며, 최소 연령 요건도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학술적 의의
게루시아는 스파르타의 혼합 정체(政體)에서 귀족적 요소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평가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게루시아가 스파르타 헌법에서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kaloi kagathoi)을 대표하는 요소라고 보았다. 게루시아와 에포로이, 민회 간의 상대적 권력 관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며, 이는 고대 스파르타의 정치사 연구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