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안(建安)은 중국 후한(後漢)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 유협이 사용한 세 번째 연호이다. 196년 1월(음력 기준)부터 220년 3월까지 약 24년 3개월 동안 사용되었다.
개원 배경
건안 연호는 흥평(興平) 3년인 196년 2월 23일(음력 1월 7일)에 개원되었다. 당시 후한은 황건적의 난 이후 각지의 군웅들이 할거하며 혼란한 상황이었고, 헌제는 조조(曹操)의 보호 아래 허창(許昌)으로 천도한 시기에 해당한다.
역사적 의의
건안 연간은 조조가 헌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천자를 협박해 제후에게 명령을 내리는 '협천자(挾天子)' 체제를 구축한 시기였다. 조조는 이 연호를 사용하는 동안 북방의 여러 세력을 통합하며 위(魏) 왕조의 기반을 다졌다.
220년 조조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뒤를 이어 위왕이 된 후, 연호를 연강(延康)으로 고쳤다. 그러나 촉한(蜀漢)의 유비(劉備)는 221년까지, 오(吳)의 손권(孫權)은 222년까지 건안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건안 문학
건안 연간은 중국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시기로, 조조·조비·조식 삼부자와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불리는 일곱 명의 문인(공융, 진림, 왕찬, 서간, 완우, 응창, 유정)이 활동하며 사실적이고 진지한 표현의 문학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문학을 '건안문학' 또는 '건안체(建安體)'라고 부른다.
건안군(建安郡)
같은 한자(建安)를 사용하는 지명으로, 중국 진(晉)나라가 민월(閩越) 지역을 정복한 후 설치한 군(郡)이 있다. 이는 오늘날 중국 푸젠성(福建省) 일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