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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록군

거록군(鉅鹿郡)은 중국의 옛 행정 구역이다. 군국제 시행 시의 왕국령으로서는 거록국(鉅鹿國)이라고 한다.

연혁

거록군은 진(秦)나라가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진시황 25년(기원전 222년)이라는 설과 진시황 19년(기원전 228년)이라는 설이 있다. 명칭은 거록택(鉅鹿澤)에서 유래했다. 군의 행정 중심지(치소)는 거록현(현재의 허베이성 싱타이시 핑샹현 서남)에 두었다.

전한(前漢) 무제가 13주를 두면서 기주(冀州)에 속했다. 평제 시기 원시 2년(서기 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호구 15만 5951호, 인구 82만 7177명이 있었으며, 20개 현(12현 8후국)을 관할했다.

후한(後漢) 시기에는 광평국(廣平國)을 통폐합하여 15개 현을 관할했으며, 대략 현재의 싱타이시 중부 일대와 한단시 북부 일부까지 관할했다. 후한 순제 영화 5년(140년) 당시 기준으로 109,517호, 602,906명이 살았다.

후한 명제 영평 15년(72년)에는 명제의 셋째 아들 유공(劉恭)이 거록왕(鉅鹿王)으로 책봉되면서 일시적으로 왕국이 되었으나, 79년에 유공이 강릉왕으로 이봉되면서 다시 군으로 환원되었다.

역사적 의의

후한 말기인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날 때, 거록군은 그 주동자 장각(張角)의 고향으로서 주요 발발지가 되었다. 이후 원소와 조조의 지배를 차례로 거쳤으며, 조조가 위공(魏公)에 봉해지면서 위나라의 식읍에 편입되었다.

서진(西晉) 건국 이후에는 군의 영역이 축소되어 2현만을 거느리게 되었다. 북위(北魏) 시기에는 정주(定州)에 속했으며, 훗날 양국군(陽國郡)으로 개명되면서 거록군이라는 명칭은 소멸하였다.

위치

거록군·거록현의 이름을 물려받은 현재의 쥐루현(巨鹿县)은 옛 거록군의 남련현(南䜌縣)에 해당하며, 옛 거록군의 중심지는 현재의 싱타이시 핑샹현 서남 일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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