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예배(Reformed worship)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 혹은 장로교회를 포함한 칼뱅주의 전통에 속한 교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말한다. 지역과 국가에 따라 예배의 세부 형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공적 예배는 "규정적 예배 원칙"(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에 의해 규율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예배에 포함되는 요소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에 한정되어야 한다.
역사적 개요
개혁교회 예배의 형성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각지의 개혁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취리히에서 개혁 작업을 시작한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는 1519년 주일 예배를 제정하면서 미사 전후에 행해지던 중세 후기의 예전인 "프론"(Prone)에서 예배 형식을 발전시켰다. 이 예배에는 주기도문, 성모송, 설교, 사도신경, 십계명, 고백과 사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의 개혁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는 예배가 성경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고 보아 교회 예전에 있었던 많은 극적인 의식을 제거하고, 예배를 설교, 헌금, 성례, 기도로 제한했다. 바젤의 요한 외이콜람파디우스(John Oecolampadius)는 성경이 세부적인 예식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모든 예배가 성경적 원칙에 따라 인도되어야 하며, 그것은 예배의 단순함과 소박함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존 칼빈(John Calvin)의 예배 사상은 1538년 이후 스트라스부르에서 활동하며 부처와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칼빈의 예전은 매주일 십계명을 부르는 등 예배자의 부족함을 강조하는 교훈적 성격이 강했으며, 예배는 전적으로 현지어로 진행되었고 회중이 기도에 참여하도록 구성되었다. 칼빈의 제네바 예배는 대륙 개혁주의 예배의 모델이 되었으며, 16세기 말까지 모든 개혁교회에서 고정된 예배 순서가 사용되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영국과 독일의 난민 교회에서 예배 질서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1574년과 1578년 도르트(Dordrecht) 총회에서 비준되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존 녹스(John Knox)는 칼빈의 예배에 기초하여 스코틀랜드 교회를 위한 예배서를 작성했다. 이후 청교도와 분리주의자들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예배 요소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더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설교
개혁교회 예배에서 설교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츠빙글리는 복음서 본문 중심의 설교 대신 성경 전체를 순차적으로 설교하는 연속 강해(lectio continua) 방식을 사용했으며, 이는 요한 크리소스톰의 설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매주일 오후 교리문답식 설교가 실시되어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 성례 등이 매년 설명되었다. 16~17세기 개혁교회 예배에서는 들려지는 말씀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으며, 회중 기도는 길고 신학적으로 무게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음악
예배 음악에 관한 태도는 개혁교회 내에서도 다양했다. 츠빙글리는 1523년 취리히에서 성경이 예배 음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예배 중 음악을 완전히 폐지했다. 반면 부처의 지도 아래 스트라스부르의 개혁교회는 회중 찬송을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이후 시편을 중심으로 많은 찬송가를 산출했다. 칼빈은 1538년부터 프랑스어로 된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시편집은 클레망 마로(Clement Marot) 등의 번역과 클로드 구디멜(Claude Goudimel),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 등의 곡조로 구성되었으며, 사실상 시편만 수록되었다. 시편 독점 사용(Exclusive Psalmody)은 이후 약 200년간 개혁교회의 지배적 관행이 되었다. 시편은 회중이 단성(單聲)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오르간 사용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18세기 경건주의의 영향과 함께 찬송가 사용이 확대되었고,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장로교에서도 찬송가를 수용하게 되었다.
성찬
칼빈은 성찬에 대해 루터와 츠빙글리 사이의 중간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영적으로(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전달된다고 보았다. 신자들은 성찬대에 앉거나 무릎을 꿇고 성찬에 참여했다. 칼빈은 매주일 성찬을 시행하기를 원했으나 제네바 시의회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 분기별로 시행되었다. 성찬 참여 이전에는 회중의 철저한 자기 성찰 기간이 있었다. 대륙 개혁교회에서는 성찬이 축일에 거행되었고, 신자들은 단정한 복장을 갖추는 것이 기대되었다.
세례
종교개혁 이전에 세례는 종종 사적인 장소에서 출생 축하 의식으로 행해졌으며, 세례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여겨 조산사들이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관행도 있었다. 부처는 세례를 예배의 일부로 편입시켜 회중이 자신의 세례를 기억할 수 있게 했다. 츠빙글리는 세례를 개인에게 구원을 부여하는 의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이해했으며, 이는 이후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으로 발전했다. 개혁교회는 유아세례를 유지했으며, 어린이가 성숙하면 공개적인 신앙 고백을 통해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성인 숭배와 절기
개혁교회에서는 성인에 대한 기도가 배격되었다. 제네바에서는 성인 축일이 폐지되었고, 크리스마스, 부활절, 승천절, 성령강림절만이 주일로 지켜졌다. 대륙 개혁교회에서는 성탄절, 성금요일, 부활절, 승천절, 성령강림절 등 다섯 가지 복음적 축일이 정기적으로 지켜졌다. 청교도들은 대체로 교회력을 거의 폐기했다.
같이 보기
- 칼뱅주의
- 개혁교회
- 장로교
- 규정적 예배 원칙
- 제네바 시편집
참고 문헌
- Bürki, Bruno. "Reformed Worship in Continental Europe in the Seventeenth Century." in Vischer, Lukas (ed.), Christian Worship in Reformed Churches Past and Present. Cambridge: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3.
- McKee, Elsie Anne. "Reformed Worship in the Sixteenth Century." in Vischer, Lukas (ed.), Christian Worship in Reformed Churches Past and Present. Cambridge: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3.
- Old, Hughes Oliphant. Worship.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
- White, James F. Protestant Worship. Louisville, KY: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