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의 섭정은 중국 청나라 제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 1654~1722)가 아버지 순치제(順治帝)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로 즉위한 이후 직접 친정(親政)을 시작하기 전까지, 국정을 대신하여 수행한 섭정 체제와 그 기간 동안 섭정을 맡았던 인물들을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순치제는 1661년 2월 사망하면서 당시 7세였던 아들 강희제에게 보위를 넘겼다. 유언에 따라 순치제는 네 명의 내각 대신(內閣大臣)을 섭정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소니(索尼, Sonin), 수크사하(蘇克薩哈, Suksaha), 어빌룬(遏必隆, Ebilun), 오보이(鰲拜, Oboi)이다. 이 네 명의 섭정 체제를 흔히 '사대신 섭정기(Four Regents period)'라고 부른다.
섭정 초기에는 네 섭정이 협력하여 통치를 수행하였다. 이들은 명(明) 왕조 잔존 세력에 대한 토벌을 계속하여 1662년 남명(南明)의 영력제(永曆帝)를 처형하였고, 이후 청나라 내부의 반청(反淸) 무장 세력을 진압하였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와 경제의 회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것도 이 시기의 주요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섭정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 균열을 드러냈다. 가장 서열이 높았던 소니가 노령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국정에서 물러나게 되자, 무력한 어빌룬을 활용하고 수크사하를 배제한 오보이가 실질적인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1667년 소니가 사망하기 직전, 그는 14세의 강희제에게 조기 친정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같은 해 8월 강희제는 형식적인 친정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강희제는 남은 섭정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이들을 보좌 대신으로 격하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오보이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1669년, 강희제는 효장태후(孝莊太后)의 지원을 받아 오보이를 체포하고 그 권력을 제거하였다. 어빌룬은 관직에서 물러났고, 오보이의 측근 세력은 해체되었다. 이로써 약 8년간 지속된 사대신 섭정기는 종식되고 강희제의 본격적인 친정 체제가 시작되었다.
강희제의 섭정기는 청나라 초기의 정치적 안정과 전쟁 후 복구가 이루어진 전환기였으며, 이후 강희제가 장기간에 걸쳐 청 제국의 전성기를 구축하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섭정기에는 어린 황제의 조기 친정 요청, 섭정 간의 권력 다툼, 그리고 황제 친정 이후의 정치적 정리 등 청나라 초기 권력 구조의 형성 과정이 핵심 내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