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김씨(江西金氏)는 평안남도 강서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강릉 김씨(江陵 金氏)에서 분적(分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는 김반(金泮)이다. 김반의 자는 사원(詞源), 호는 송정(松亭)이며, 강릉에서 출생하여 양촌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99년(정종 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김구(金鉤)·김말(金末)과 함께 '경학 삼김(經學 三金)'으로 불렸다. 1448년(세종 30)에는 겸사성 윤상(尹祥), 사성 김말(金末)과 함께 경서의 이동(異同)에 대해 논쟁하다가 파직되어 강서에서 생활하다가 사망하였다. 이후 강서현 선비들의 요청으로 학동서원(鶴洞書院)이 세워져 그를 배향하였다.
김반의 선계와 관향은 일부 실전(失傳)되어 상고할 수 없으나, 『국조방목(國朝榜目)』에 본관이 강릉으로 기록된 점으로 보아 후손들이 강릉 김씨에서 분적하여 그가 살던 강서(江西)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는 시조 소원(溯源) 과정이 있었다. 1784년 개성에서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석》에 신라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인 김건(金鍵)이 등장하는데, 이를 근거로 김건을 원시조로 삼고 김반이 그의 후손이라고 소원하였다. 김건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후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러나 김건은 《김은열 묘지명》 이외에 《고려사》 등의 문헌이나 금석문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김은열 묘지석》 역시 현재 실물이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어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본관인 강서군은 평안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으로, 옛 강서(江西)와 함종(咸從) 두 군을 합한 지명이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영풍군(현 영주시) 풍기읍 일대에 있었다.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 전국에 1,210가구, 3,87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희귀 성씨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