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하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기록상 최소 두 명 이상의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존재한다.
1. 강명하 (1850년생)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28일, 봉오리와 파포리 일대에서 벌어진 독립만세 시위의 배후 주동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1919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면소(免訴)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하여 알 수 없다.
한편 위키백과에는 그가 이창선, 김광필, 박용구 등과 함께 3·1만세운동을 사전 계획하고, 상서면 봉오리·다목리 지역에 태극기를 전달한 뒤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상서면 주재소를 점거하고 화천으로 향하던 중 일본 헌병과 교전 끝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앞선 1850년생 인물과의 생애 서사가 일치하지 않아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2. 강명하 (1886년생) 함경남도 홍원현 출신이다. 1921년 4월 중국 장백현에서 윤세복, 김호 등 대종교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흥업단(興業團)의 통신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6월에는 장백현에 근거지를 둔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제1지단에 가입하였고, 1923년 대한독립광정단(大韓獨立光正團)이 창립되었을 때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3. 강명하 (1925년생) 함경남도 홍원현에서 1925년 10월 28일에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독립운동 활동 내역과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공개된 정보가 부족하다. 2013년 건국포장이 서훈되었다.
어원 및 이름 구성 '강명하(姜明河)'는 한국인의 성씨와 이름으로, '강(姜)'은 성씨, '명(明)'은 '밝을 명', '하(河)'는 '물 하' 자를 사용한다. 이는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 여러 인물이 공유한 이름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혼선이 존재하므로 각 인물의 출생 연도와 활동 지역을 기준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