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 전투(江寧之戰, 1853년)는 태평천국 운동(태평천국의 난) 기간 중 태평천국군이 청나라가 통치하던 강소성 강녕부(현재의 난징)를 공격하여 함락시킨 전투이다.
1853년 1월, 태평천국군은 무창(우한)을 점령한 후 북쪽으로 베이징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동쪽으로 진격하여 난징을 장악하기로 결정하였다. 태평천국군은 약 5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동진하여 무저항 상태인 안휘성의 구강과 안경을 점령한 뒤, 1853년 3월 6일 난징에 도착하였다. 당시 병력은 약 75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전투는 1853년 3월 8일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3일간 도시를 포위하였다. 태평천국군은 성벽 아래로 폭발물을 심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팠으며, 그중 두 개는 제때 폭발하였으나 하나는 지연 폭발로 인해 많은 태평천국군 병사가 아군의 폭발에 희생되기도 하였다. 또한 승려로 위장한 간자(첩자)를 도시에 잠입시켜 성벽의 약점을 알리게 하였다.
청나라 측은 향영이 지휘하는 약 4만~6만 명의 녹영군과 팔기군이 방어를 맡았으나, 1853년 3월 19일 청군이 철수하면서 난징은 함락되었다. 남은 청나라 수비군은 태평천국에 항복하였으나 처형되었다. 이 전투에서 청군 측 사상자는 약 3만 명에 달한 것으로 기록된다.
전투 이후 태평천국은 이곳을 '천경(天京)'으로 개명하고 수도로 삼았다. 이후 1864년 천경 공방전으로 청나라에 함락될 때까지 11년간 태평천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이 전투는 태평천국이 초기 세력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태평천국 운동의 전개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