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監營) 은 조선시대 각 도(道)의 관찰사(觀察使)가 거처하며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이다. 관찰사는 국왕이 직접 임명한 종2품 관직으로,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하며, 감사(監司)라고도 불렸다. 따라서 감영은 현대의 도청(道廳)에 해당하는 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전국은 팔도(八道)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각 도마다 감영이 설치되었으므로 감영은 모두 여덟 곳이었다. 각 감영의 위치와 별칭은 다음과 같다.
- 경기감영: 처음에는 수원에 두었다가 이후 한양 돈의문(敦義門) 밖에 설치되었으며, 기영(畿營)이라 불렸다.
- 충청감영: 충주에 두었다가 1602년 공주로 옮겼으며, 공주가 금강을 끼고 있어 금영(錦營)이라 불렸다.
- 경상감영: 상주에 두었다가 1601년 대구로 옮겼으며, 영영(嶺營)이라 불렸다.
- 전라감영: 전주에 두었으며, 완영(完營)이라 불렸다.
- 황해감영: 해주에 두었다.
- 강원감영: 원주에 두었다.
- 함경감영: 함흥에 두었다.
- 평안감영: 평양에 두었다.
감영의 위치는 조선 초기에는 각 도의 관찰사가 순행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행영제(行營制)로 운영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감사가 감영에 머물며 도정을 처결하는 유영제(留營制)가 정착되면서 17세기 초에 이르러 감영의 소재지가 고정되었다.
감영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관둔전(官屯田)과 늠전(廩田) 등으로 충당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기록에 따르면 관둔전 20결, 늠전 80결, 공수전(公須田) 15결이 지급되었으며, 감영 소속 노비는 도에 따라 450명에서 600명가량이었다. 또한 각 감영에는 소속 공장(工匠)이 배치되어 있었다.
관찰사는 감영에서 각 도의 행정·사법·군사·농업·교육 등의 업무를 총괄하였으며, 산하 수령들에 대한 감찰과 명령권을 가졌다. 또한 1년에 두 차례씩 관할 도내 각 고을을 순회하는 순력(巡歷)을 시행하였다.
감영은 일제강점기와 근대 행정체제 개편 과정에서 폐지되었으나, 그 명칭과 유산은 현재에도 일부 지역에서 지역 역사문화 자원으로 보존·활용되고 있다. 특히 전라감영, 경상감영 등은 당시 관찰사가 집무하던 선화당(宣化堂) 건물이 일부 보존되어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