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아초 1세 비스콘티(Galeazzo I Visconti, 1277년 1월 21일 ~ 1328년 8월 6일)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통치한 비스콘티 가문 출신의 군주로, 1322년부터 1327년까지 밀라노의 영주(lord)로 재임하였다.
출생과 가문
그는 마테오 1세 비스콘티(Matteo I Visconti)와 보나코사 보리(Bonacosa Borri)의 아들로 태어났다. 1300년 6월 24일, 그는 오비초 2세 데스테(Obizzo II d'Este)의 딸인 베아트리체 데스테(Beatrice d'Este)와 혼인하였다. 이듬해 비스콘티 가문은 밀라노에서 추방당하여, 갈레아초는 수년간 에스테 가문과 보나콜시 가문의 궁정에서 지냈다.
통치와 정치적 행보
1322년 갈레아초는 밀라노의 카피타노 델 포폴로(capitano del popolo, 민중의 수장)로 선출되었으며, 바시냐나(Bassignana)에서 교황령과 앙주 가문의 연합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척인 로드리시오 비스콘티가 일으킨 반란과 밀라노 내부의 불안으로 인해 다시 추방당하기도 하였다.
1323년 3월에는 교황 요한 22세(John XXII)에 의해 파문(excommunication)을 당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Louis IV)의 지원을 받아, 몬차(Monza)에서 교황이 파견한 군대를 격퇴하였다.
말년과 사망
1328년, 그의 형 마르코(Marco)가 제기한 배신 혐의와 형제 스테파노(Stefano) 암살 혐의와 관련하여 황제 루트비히 4세는 그를 몬차에 수감시켰다. 갈레아초는 1328년 3월 석방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기벨린(Ghibelline) 지도자였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Castruccio Castracani)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해 8월 페시아(Pescia)에서 사망하였다.
가족과 후계
그의 아들 아초네(Azzone) 비스콘티가 밀라노의 통치권을 계승하였다. 그의 딸 리차르다(Ricciarda)는 톰마소 2세 디 살루초(Tommaso II di Saluzzo)와 혼인하였다.
갈레아초 1세 비스콘티의 치세는 밀라노와 교황령·신성로마제국 간의 복잡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비스콘티 가문이 밀라노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