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인류(閑院流, 일본어: かんいんりゅう)는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번성한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의 지류 가문으로, 공가(公家)의 일문(一門)이다. 산조가(三条家), 사이온지가(西園寺家), 도쿠다이지가(徳大寺家)를 비롯한 여러 공가 가문을 배출한 유력한 가문 계통이다.
기원과 시조
간인류의 시조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의 숙부인 후지와라노 킨스에(藤原公季)이다. '간인(閑院)'이라는 명칭은 원래 후지와라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藤原冬嗣)의 저택에서 유래한 것으로, 킨스에가 이를 전령(傳領)하여 가문의 명칭으로 삼았다. 이 저택은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里内裏, 임시 궁궐)로도 사용되었다.
킨스에는 미치나가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内大臣)의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右大臣)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이르렀다.
세력 확장
간인류가 본격적으로 권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3대 킨나리(公成)의 딸이 고산조 천황(後三条天皇)의 비(妃)가 되어 훗날 시라카와 천황(白河天皇)이 되는 사다히토 친왕을 낳으면서부터이다. 이후 간인류는 대대로 천황의 외척(外戚)으로서 권세를 떨쳤다.
- 4대 사네스에(実季)의 딸은 도바 천황(鳥羽天皇)의 생모가 되었다.
- 5대 킨자네(公実)의 딸 다마코(璋子)는 스토쿠 천황(崇徳天皇)과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의 생모가 되었다.
킨자네는 도바 천황 즉위 당시 섭관가(摂関家)의 젊은 당주를 얕잡아보며 자신이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는 시라카와 인(院)의 측근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의 일축을 받기도 하였다.
분가와 계보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간인류는 산조가, 사이온지가, 도쿠다이지가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이들 가문은 섭가(摂家)에 버금가는 가격(家格)인 청화가(清華家)에 해당하며, 그 외에도 산조가 서류인 사가가(嵯峨家), 오기마치산조가(正親町三条家), 산조니시가(三条西家) 등 대신가(大臣家)와 우림가(羽林家)에 이르는 19개 가문이 있어 일문 전체가 크게 번영하였다.
간인류 일문의 당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이름의 한 글자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으며,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의의
간인류는 일본 중세 공가 사회에서 외척으로서의 지위를 통해 큰 세력을 획득한 대표적인 가문 계통으로, 일본 귀족 사회의 가문 구조와 천황가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