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복전쟁(角福戦争, 가쿠후쿠센소)은 일본 정치사에서 1970년대부터 1987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사이의 권력 다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명칭은 다나카 가쿠에이의 '각(角)'자와 후쿠다 다케오의 '복(福)'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배경
다나카 가쿠에이는 소학교 졸업 후 자수성가한 인물로, 적극 재정에 의한 고도경제성장 노선과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후쿠다 다케오는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대장성에서 근무한 엘리트 관료 출신으로, 균형재정을 중시하고 타이완과의 외교적 균형을 중시했다. 이러한 상반된 출신 배경과 정책 노선으로 인해 이 대립은 단순한 파벌 싸움을 넘어 계급투쟁의 성격도 띠었다.
전개
각복전쟁은 크게 네 차례의 국면으로 나뉜다.
제1차 각복전쟁(1970~1972):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후계 자리를 두고 다나카와 후쿠다가 경쟁하였다. 197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나카가 승리하여 총재직을 차지했다.
휴전기: 다나카 내각이 출범했으나 록히드 사건이 터지면서 다나카가 총재직을 내놓았다. 이후 미키 다케오가 후임 총재가 되었으나, 다나카·후쿠다·오히라 마사요시 등이 반미키 전선을 형성하여 미키를 끌어내렸다.
제2차 각복전쟁(1976~1978): 후쿠다가 총재가 되었으나 오히라 마사요시와의 밀약을 파기하고 재선을 시도했다. 다나카는 오히라를 지지하였고, 1978년 예비선거에서 오히라가 승리하면서 후쿠다는 본선거를 포기했다.
제3차 각복전쟁(1979~1980): 1979년 총선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자 후쿠다파 등이 오히라의 퇴진을 요구했다. 오히라는 이를 거부하였고, 국회에서 자민당 후보가 오히라와 후쿠다로 나뉘어 대립하는 '40일 항쟁'이 발생했다. 오히라가 총리 재선에 성공했으나 1980년 급사했다.
제4차 각복전쟁(1980~1987): 오히라 사후 스즈키 젠코,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총재가 되었으나 다나카가 킹메이커로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다나카파 내부에서 다케시타 노보루와 가네마루 신이 창정회를 결성하며 이탈하였고, 다나카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종결
다나카 가쿠에이는 1993년, 후쿠다 다케오는 1995년에 각각 사망하면서 각복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후 두 사람의 파벌을 물려받은 다케시타 노보루와 아베 신타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2007년 후쿠다 다케오의 장남인 후쿠다 야스오가 총리가 되고 제1야당 대표로 다나카의 제자였던 오자와 이치로가 취임하면서 '각복전쟁의 재래'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2012년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이러한 구도는 사실상 소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