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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운동

가톨릭 운동(라틴어: Actio Catholica, 영어: Catholic Action)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평신도들이 교회 당국의 위임과 지도 아래 사회적으로 가톨릭 정신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적 사도직 활동과 그러한 단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어원 및 개념 형성

'가톨릭 운동'이라는 용어를 평신도 단체에 처음 적용한 사람은 교황 비오 10세(재위 1903~1914)였으나, 평신도의 '교계적 사제직 참여'라는 명확한 개념 아래 평신도 운동을 조직화한 것은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가톨릭 운동의 네 가지 조건은 교회 당국의 위임(mandatum), 조직성, 사도성, 평신도 활동이다.

역사적 배경

가톨릭 운동은 19세기 스페인, 이탈리아, 바이에른, 프랑스, 벨기에 등 역사적으로 가톨릭 전통이 깊은 국가들에서 반성직자주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1848년 교황 비오 9세의 이탈리아 독립전쟁 탈락과 교황 세속권의 소멸이라는 위기 속에서 교황과 교회의 권리 회복을 목적으로 평신도 주체의 조직적 운동이 시작되었다.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는 이러한 움직임을 사회 가톨리시즘의 이름으로 공인하였다.

주요 전개

이탈리아에서는 1915년 루이지 스트루초(Luigi Sturzo) 신부가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신자 전국조직 '가톨릭 액션'의 서기장이 되었고, 1919년 이탈리아 최초의 가톨릭 정당인 이탈리아 인민당을 창설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제3공화국의 반가톨릭 움직임에 저항하여 가톨릭 서클 조직, 기독교민주당 구상,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결성 등이 이루어졌다. 벨기에에서는 카르딘(Joseph Cardijn) 신부가 1925년 시작한 노동 청년 운동이 가톨릭 운동의 모델이 되었으며,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훈련 방법이 널리 확산되었다.

한국에서의 전개

한국 교회에서는 1931년 전국 공의회에서 가톨릭 운동을 공식 채택하였고, 평양교구장 모리스(J. Morris) 몬시뇰을 위원장으로 하는 주교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33년 '가톨릭 진행'이라는 이름으로 실천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남녀 청년회 조직을 기반으로 언론·출판, 의료, 교육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반공 투쟁과 교회의 정치·사회적 영향력 확장으로 목표가 전환되었으며, 장면을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의 정계 진출, 경향신문 창간(1946) 등이 대표적이다.

개념의 변화와 의의

교황 비오 12세는 1957년 제2차 평신도 대회에서 가톨릭 운동의 개념을 모든 평신도 조직으로 확대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포괄적 개념이 널리 사용되면서 가톨릭 운동은 운동으로서 또는 신학적 개념으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잃게 되었으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군주적·교계적 교회 개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면적·공동체적 교회 개념으로 이행하는 교량 역할을 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영국, 미국, 폴란드, 대한민국 등 여러 국가에서 가톨릭농민회, 노동청년회, 학생회, 의사회 등 다양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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