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야스모토(일본어: 加藤 泰幹 かとう やすもと, 1813년 5월 1일 ~ 1853년 2월 22일)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로, 이요국(伊予国) 오즈번(大洲藩) 제11대 번주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야스마사(泰仁)가 있다. 관위는 종5위하 토토미노카미(遠江守)이다.
생애
가토 야스모토는 분카(文化) 10년(1813년) 4월 1일, 10대 번주 가토 야스즈미(加藤泰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사쿠쥬로(作十郎)이다.
분세이(文政) 9년(182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家督)을 이어받아 번주가 되었다. 당시 번의 재정은 막부의 명령에 따른 공역(公役)으로 인해 악화되어 있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아게마이(上げ米, 지세의 조기 납부 공출 제도)를 실시하였다.
덴포(天保) 2년(1831년) 10월에는 히로카와(肱川) 치수 공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홍수와 풍수해 등의 천재가 잇따르면서 번 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대해 5개년 절약 정책과 물가 인하 정책을 시행하였고, 여러 가지 가격정(価格定)을 제정하여 공정 가격 제도를 도입하는 등 재정 개혁에 상당한 수완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에이(嘉永) 6년(1853년) 정월 15일에 사망하였으며, 그 뒤를 장남 야스토미(泰鞏)가 이었다. 묘소는 도쿄도 다이토구 마쓰가타니(松が谷)의 가이젠지(海禅寺)에 있다.
가계
- 아버지: 가토 야스즈미(加藤泰済, 10대 번주)
- 어머니: 묘쇼인(妙性院)
- 배우자: 마에다 도시쓰요(前田利誘)의 딸 이쿠코(幾子), 운린인(雲林院)
- 자녀: 장남 가토 야스토미(加藤泰鞏, 1844~1864), 4남 가토 야스아키(加藤泰秋, 1846~1926), 그 외 딸들이 다수 있었으며 여러 다이묘 가문에 출가하였다.
가토 야스모토는 에도 시대 후기의 지방 다이묘로서, 재정 개혁과 치수 사업 등 번정(藩政) 운영에 힘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반복되는 자연재해 속에서 통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점이 역사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