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85년경~기원전 42년 10월 3일.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 율법학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음모의 핵심 주동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기 생애와 경력 본명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Gaius Cassius Longinus)이다. 귀족 가문인 카시우스 씨족 출신으로,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많지 않다. 기원전 53년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 당시 퀘이스토르(재무관)로 참전하여, 카라에 전투에서 로마 군대가 대패한 후 잔여 병력을 수습하여 시리아 속주로 철수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시리아 총독 대리로서 파르티아의 재침공을 막아내고 유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군사적 역량을 보였다.
정치 활동과 카이사르 암살 기원전 44년 프라이토르 페레그리누스(외국인 담당 법무관)에 당선되었다. 본래 폼페이우스 파에 속했으나,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한 뒤 사면받고 카이사르 진영에 합류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독재 권력이 강화되고 종신 독재관에 오르자, 공화정 수호를 명분으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등과 함께 암살 음모를 꾸몄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이데스 3월) 원로원 회의장에서 카이사르를 직접 찌른 암살자 중 한 명이다.
최후 암살 후 동방 속주로 가서 군세를 규합했다. 기원전 42년 마케도니아 필리피 전투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연합군에 맞서 브루투스와 함께 싸웠으나, 1차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에게 패한 후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자결했다.
학문적 업적 군인과 정치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법리 해석과 저술은 후대 로마법 발전,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편찬 과정에서 중요한 인용 자료가 되었다.
성격 및 평가 고대 사료(플루타르코스, 아피아노스, 카시우스 디오 등)에서는 강직하고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 묘사되나, 동시에 잔혹하고 야심이 크다는 부정적 평가도 공존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에서는 "여윈 몸매의 카시우스"로 등장하며, 야심가이자 음모의 실질적 기획자로 극적으로 형상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