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다(가우르, 고르, 라크나우티, 락슈마나바티, 잔나타바드라고도 함)는 인도 아대륙 동부 벵골 지역에 있었던 역사적인 도시로, 고전 및 중세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 중 하나였다. 여러 왕조 아래 벵골의 수도로 기능했으며, 현대에는 인도 서벵골주 말다구와 방글라데시 라지샤히주(차파이나와브강지구)에 걸쳐 폐허로 남아 있다.
역사
7세기 가우다 왕국이 샤샹카 왕에 의해 세워지면서 가우다는 벵골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이후 "구르(Gaur)"라는 이름은 점차 벵골과 벵골인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203년, 고리 왕조의 무함마드 궁정의 부관인 바흐티야르 할지가 가우다를 점령하면서 이슬람 통치가 시작되었다.
1453년부터 1565년까지 약 112년 동안 가우다는 벵골 술탄국의 수도였다. 1500년경 가우다는 인구 약 20만 명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추산되었으며, 인도 아대륙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술탄들은 성채, 다수의 모스크, 왕궁, 운하와 다리 등을 건설했으며, 건축물에는 유약을 바른 타일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도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6세기 벵골 술탄국이 붕괴되고 무굴 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가우다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굴 황제 후마윤이 이 지역을 침공했을 당시 도시 이름을 잔나타바드("천상의 도시")로 바꾸었다. 이후 셰르 샤 수리에 의해 도시가 약탈당했고, 전염병의 유행과 갠지스강의 흐름 변화로 인해 전략적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이후 무굴 제국의 새로운 수도는 라즈마할과 다카에 건설되었다.
유적
가우다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건축 유적은 벵골 술탄국 시대의 것으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다킬 다르와자, 피오즈 미나르, 카담 라술 모스크, 초토 소나 모스크, 바로 쇼나 마스지드, 루카초리 관문, 다라스바리 모스크, 무굴 타하카나, 발랄 바티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은 중세 벵골 건축을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주변 역사
가우다는 벵골 역사와 인도 아대륙 역사에서 중요한 수도였으며, 18세기와 19세기 유럽 화가들의 예술 작품에도 묘사되었다. 프란시스 뷰캐넌-해밀턴과 윌리엄 프랭클린 같은 식민지 관리들은 옛 벵골 수도에 대한 상세한 조사 기록을 남겼다.
주의: 가우다라는 이름은 동명의 다른 개념(그리스 크레테 섬 남쪽의 가우다 섬, 즉 가브도스 섬 등)과 혼동되지 않도록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가우다는 인도 아대륙 벵골 지역의 역사적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