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고에성 전투(일본어: 河越城の戦い, 가와고에조노타타카이)는 1546년 5월 19일(일본력 덴분 15년 4월 20일) 일본 센고쿠 시대에 무사시국 가와고에성 부근(현재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호조 우지야스가 이끄는 호조군과 우에스기 노리마사, 우에스기 도모사다, 아시카가 하루우지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대치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호조군이 승리하였다.
이 전투는 오케하자마 전투, 이쓰쿠시마 전투와 함께 일본 3대 야전(일본 3대 기습) 중 하나로 꼽히며, '가와고에 야전(河越夜戦)'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간토 지방에서는 고가 구보와 간토 간레이의 대립(교토쿠의 난),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과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대립(조쿄의 난)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 틈을 타 호조 소운이 사가미로 진출하였고, 그의 아들 호조 우지쓰나는 무사시로 진출하여 에도 성과 가와고에 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고가 구보, 간토 간레이(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은 동맹을 맺고 호조 가문에 반격을 개시하였다.
전투 경과
1545년 10월 31일, 연합군(약 7만으로 전해짐)은 가와고에 성을 포위하였다. 성은 호조 쓰나시게가 약 3천 병력으로 수비하고 있었다. 호조 우지야스는 약 8천 병력을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 수개월간 교착 상태가 지속된 후, 우지야스는 거짓 항복을 내비치는 등 전술을 구사하여 연합군을 방심하게 만들었다.
1546년 5월 19일 자정, 우지야스는 8천 병력을 4개 부대로 나누어 연합군 진영에 기습을 감행하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연합군은 대혼란에 빠졌고, 이 과정에서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당주 우에스기 도모사다가 전사하였다. 또한 성 안에서 대기하던 호조 쓰나시게도 아시카가 하루우지의 진영을 공격하여 연합군은 궤멸되었다. 연합군의 전사자는 약 1만 3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영향
이 전투로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은 멸망하였고,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의 노리마사는 에치고로 도망쳐 나가오 가게토라(후일 우에스기 겐신)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한편 호조 가문은 간토 남서부로 세력권을 확대하며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이 전투는 약 10배에 달하는 병력 차를 극복하고 승리한 전술적 기습 작전으로, 일본 전국시대 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