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야마성(亀山城, 가메야마조)은 일본 교토부 가메오카시에 위치한 평산성이다. 일반적으로 지역 명칭을 따 가메오카성(亀岡城)이라고도 불린다.
개요
가메야마성은 교토부 가메오카시 아라쓰카초 일대(구 단바국 구와다군 가메오카)에 있었던 일본의 성곽이다. 헤이산성(平山城)에 해당하며, 현재는 종교법인 오모토(大本)의 본부가 입지하고 있다. 명칭상 '가메야마성'은 일본 각지에 복수로 존재하지만, 본 항목은 교토부(단바국)에 위치한 성을 다룬다.
역사
가메야마성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단바 국 정벌에 나선 아케치 미쓰히데가 1578년경부터 가메오카 분지의 중심부인 가메야마 산에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쓰히데는 단바 평정 후 이 성을 통치 거점으로 삼았으나, 1582년 혼노지의 변 이후 주고쿠 지방에서 회군한 하시바 히데요시에 의해 토벌되었다.
그 후 이 성은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 주요 거점으로 중시되었으며, 하시바 히데카쓰,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등 히데요시의 친족에게 교대로 주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또한 이 성을 중시하여 1609년 후다이 다이묘 오카베 나가모리에게 성을 주어 단바 가메야마 번의 번주로 임명했다.
에도 시대 초기인 1610년경에는 막부의 동원령에 따라 서국(西国) 다이묘들이 동원되어 성이 대폭 확장·개축되었으며, 혼마루에는 5층의 승탑형(層塔型) 천수가 세워졌다. 이후 성주는 오규 마쓰다이라 가문, 스가누마 가문,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 구제 가문, 이노우에 가문, 아오야마 가문을 거쳐 1749년부터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문이 성주가 되어 메이지 유신을 맞이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1869년(메이지 2년) 가메야마 번은 가메오카 번으로 개칭되었고,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으로 인해 가메야마현을 거쳐 폐번되었다. 1877년(메이지 10년) 정부의 폐성 처분이 결정되었으며, 1889년(메이지 22년)에는 매각되었다. 1919년(다이쇼 8년) 종교법인 오모토가 성을 구입하여 관리하게 되었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모토가 성터 일대를 보존·관리하고 있다.
천수
가메야마성에는 과거 5층 5계(階)의 승탑형 대천수와 2층의 소천수가 결합된 복합식 천수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성이 축성될 당시에는 아케치 미쓰히데에 의해 3층 천수가 세워졌고, 이후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1593년 5층으로 개축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이후 천수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한편 가메야마성의 천수가 일본 최초의 승탑형 천수라는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는 도도 다카토라가 자신의 이마바리성 천수를 이축해 헌상했다는 설에 근거한 것으로, 이마바리성 천수의 외관과 규모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고 발굴 조사 결과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된 바 있어 설득력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 유구 및 현황
천수대, 석벽, 해자, 성루 등의 유구는 종교법인 오모토가 매수한 후 그 모습이 변형되었다. 1935년 오모토 사건 당시 정부에 의해 대부분이 파각되었으나, 이후 교단에 의해 다시 수복되었다. 성의 신고텐 문(나가야문)은 가메오카 시립 지요카와 소학교에 이축되어 현존한다.
오늘날 가메야마성터는 오모토의 본부가 위치해 있어 종교 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반적인 성곽 관람과는 달리 사전 신청이나 입장 절차가 요구된다. 2020년 NHK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麒麟がくる)』에서 이 성이 다루어지면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교토 부 교육위원회는 이 성터를 중요 문화재 관련 대상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교통
- JR 서일본 가메오카역에서 도보 약 10분
- JR 서일본 지요카와역에서 도보 약 5분
성터 일대는 종교법인 시설이므로 입구에서 견학 신청을 해야 한다.
참고사항
가메야마성은 일본에 복수 존재하는 성곽 명칭이다. 미에현 가메야마시, 아이치현 신시로시 등에도 동명의 성이 있어, 교토부의 성과 혼동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